35. 나는 조작가다

by 조수란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구라는 별에 사는 하나하나의 수많은 별들은 저마다 소중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마다의 개성으로 넘치는 아름다운 별들은 자신의 밝음을 몰라보고 다른 별들의 반짝임에 질투하고 괴로워하고 눈부셔한다. 그 중에 마음이란 별이 있는데 그 속에는 사랑이 있고 영혼이 담겨져 있다. 생각이라는 별에 아이디어를 반짝 떠올리기도 하면서 누구나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가고 아름다운 세계와 미래를 창조해 나가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별 속에서 소중한 매일을 사는지도 모르고 조그마한 상황에 갇혀 보이는 것만 믿고 들리는 것만 따르고 싶어 하면서 이익이라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살고 있다. 오늘도 나는 모자란 삶을 조금씩 채워가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 최고가 되지 못하더라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면서 작가님께서 나에게 선생님이라 불러주셨다. 작가님이 불러주신 ‘조수란 선생님’이란 말에 나는 처음에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고 몸 둘 바를 몰랐다.


어릴 때부터 내 마음속엔, 선생님이란 존칭과 이미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높고 존경스러웠으며 박학다식한 사람들만 부르는 이름인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한편으로는 두렵고 엄하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껌 딱지처럼 들러붙어 자리를 잡았을 터였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부족하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난생 처음으로 선생님이라 불러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그것도 나의 스승님이시자, 내가 어른이 된 다음 부족한 나를 학생으로 받아주신 선생님께서.


코로나 19 때문에 줌 회의를 여는 선생님께서는 오늘도 조수란 선생님께 과제를 내주셨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솔직히 저는 학생인데 선생님이라 불러주시지 말고 조수란 학생이라고 불러주세요. 부담이 돼서요.”


“그럴까요?”


선생님께서는 웃어넘기셨다. 얼마 후, 선생님은 줌 회의를 통하여 글쓰기 멤버님들을 소개시켜주면서 내게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셨다. 앞으로 이 분들과 함께 책을 쓰면서 서로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채워주고 응원해주면서 책 쓰기 마라톤을 끝가지 완주해나가자고 하셨다. 한마디로 우리 함께 아름다운 글 감옥에 갇혀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공유하면서 글로 요리하고 만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 사춘기를 맞으면서 몸의 키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면 두 번째 사춘기를 맞는 나는 오늘 마음의 키부터 키워나가는 게 우선이고 정상이고 시급하다. 어째서 나는 그 동안 매번마다 실패하고 실수하고 후회하면서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무슨 책을 쓴답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지도 모르는 한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님께서 부족한 나를 이끌어주신 덕분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후, 글쓰기 멤버님들이 그룹채팅에서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여러 가지의 성을 담아서 김 작가님, 민 작가님, 장 작가님 등 순식간에 많은 작가님들이 탄생했다. 하필이면 나는 성이 ‘조’씨라서 조 작가님이 되었다. 뭘 조작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작가님들이 조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면 고맙다 라기 보다 영 맘에 거슬렸다.


이 말을 듣던 사춘기 아들과 작은 딸아이가 배를 끌어안고 땅에 굴러다니면서 숨 넘어 갈듯이 깔깔깔 웃어댔다. 이 상황에 나는 눈을 옆으로 흘기면서 엄숙한 표정을 짓든지 아니면 삐지는 척이라도 해야 될 텐데 우스꽝스러운 조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나도 덩달아 배꼽잡고 웃어댔다. 그렇게 우리 집의 조 작가님의 호칭은 존경스러움 대신 놀림으로 변해버렸다.


앞으로 책을 쓰면 조작가라는 별명과 놀림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텐데 나는 아무래도 작가가 될 사람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성이 조가라서 영광스럽게 생각하라고 하셨다. 어쩌면 그 이름난 조조의 후대가 될 수 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차라리 조조보다 유비의 성을 따르고 싶다. 유, ‘유 작가님, 있다는 유.’ 오~ 있어 보인다.


가만 있자. 수많은 작가님들 중에 성이 조가인 사람이 분명 있을 터이다. 아니 많을 것이다. 일단은 모르겠고. 어쨌든 한번 점찍었으면 끝까지 그려나가야겠다. 그런데 말이다.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그룹채팅에서 우리 모두다 작가님들이면 우리를 가르쳐주신 작가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그 비밀은 다음날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예비 작가님들은 작가님을 왕 작가님, 대왕 작가님이라고 부르셨다. 역시 고수들은 달랐다.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좋은 작가님들을 만나 매일매일 배우고 웃고 떠들면서 소중한 인연을 쌓아갈 것이다. 그리고 왕 작가님, 우리의 생각을 넓혀주고 키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작가님들의 말씀이 맞았다. 책 한권을 쓴다는 의지와 꾸준한 노력과 태도가 우리는 이미 작가이다. 하지만 가끔 글쓰기를 하다가 예상치 못한 슬럼프란 녀석이 심심치 않게 고개를 들이밀고 주위를 기웃거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늪에 빠져 헤아려 나오지 못하고 나의 과거를, 나의 부족함을, 나의 솔직함을, 나의 서투른 생각을, 나의 전부를 글에다 털어놓으면 놓을수록 오히려 작아지기만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약한 생각에 힘이 빠질 때가 있다.


회사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모으기 위해 막노동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한 적이 있다. 퇴근하면 맛있는 안주와 함께 시원한 캔 맥주를 실컷 들이마시고 즐기면서 비록 육체가 힘들더라도 어쩌면 궁리 없이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더 그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찌어찌하여 책 한 권 써보겠다고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내가 봐도 영 아닌 것 같다는 후회스러움과 핑계와 게으른 생각들이 슬금슬금 머릿속을 기여 다니기도 했다. 몸은 비록 하나이지만 어떨 때엔 마음과 생각이 따로따로 노는 모양이다.


그럴 때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느긋하고 여유부릴 때가 아님을 깨닫는다. 사람이 죽으면 한 줌의 재밖에 되지 않을지언정 돈에 목숨 걸고 매달리고 집착하면서 평생을 살기에는 내게 시간이 부족하였다. 평생을 영원히 살면 모를까. 더군다나 마흔에 들어선 오늘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기적이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나가는 경적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그룹채팅에 들어가 오늘도 글쓰기 멤버님들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한 다발 가득 받아오는 날인 것 같다. 유치원어린이처럼 매일매일 꼬박꼬박 간식을 타오는 식이다.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아이들이 맛있는 간식으로 위를 충전하는 것처럼.


세상에는 좋고 나쁜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그 동안 나는 어둠속에 파묻힌 희미하고 쓸모없는 작은 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별이 어둠이 짙어 질수록 더욱 환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둠은 별을 환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배경과 같은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어둠은 우리 삶속의 고통이나 마찬가지다. 약이 쓸수록 몸에 좋은 보약이 되듯이 고통을 견디고 이겨낼수록 그 과정이 보람차고 성공은 더욱 빨리 다가온다. 고통은 인간을 더욱 성장하게 만든다. 때문에 저마다의 별들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빛을 지니고 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눈부시게 빛나는 특별한 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4. 정신의 암 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