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내 돈 내놔

by 조수란

중학교에 입학한지 1년이 다 되어갈 때다. 우리 반에 형권이라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잘 생긴 얼굴에 장난기가 많은 아이의 취미는 선생님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선생님만 보면 무슨 원수라도 되는 것 인양 행동했고 그러고는 벌 받았다. 특히 이 아이는 착하고 만만하다고 생각되는 선생님들을 집중 공격하였다.


한 번은 나이 많으신 선생님을 괴롭히기라도 작정한 듯 나뭇가지에 고무줄을 매달아 만든 새총을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그날따라 첫 교시가 마침 연세가 조금 많으신 생물선생님의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앞이마가 대머리이었고 귀밑머리에 드러난 하얀 머리와 코밑의 흰 수염이 지나간 세월 속에 차곡차곡 쌓아오면서 살아온 지난 삶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형권은 그 선생님을 볼 적마다 지나가던 잠자리가 날아와 앉으려다 미끄러 넘어져 놀라 도망갔다고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그 사이 손에 준비하였던 새총을 꺼내 칠판에 글을 쓰고 있는 선생님의 뒷모습에 견주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한 편으로 긴장되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아찔한 마음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형권이가 새총을 날리는 순간, 때마침 칠판에서 몸을 돌리는 선생님의 대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난감한 상황에 선생님께서는 짐짓 모른 체를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교과서 다음페이지로 넘겼다.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조그맣게 들려왔지만 웬일인지 화내지 않으셨다.


왜서일까? 어째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고 용서되지 못할 상황이다. 그 후에 알게 된 사실이기도 하지만 학교에서 자주 싸움질하고 도둑질하고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인 그 아이에게 단 한번이라는 마지막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그 마지막 한번을 용서해 주신 거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 이미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고 해야 할까. 선생님들은 처음엔 아이를 교무실에 자주 데려가 상담하고 용기를 주려고 애써보았지만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였을 터다.


그 아이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으며 스스로 인생의 장애물을 만들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얻는 것 같았다.


또 한 번은 우리학교에 곱슬머리를 갖고 계신 물리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목소리가 가늘고 성격이 차분하신 선생님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형권은 이 와중에도 무슨 꿍꿍이를 생각해낸 모양이다. 씨~익~웃는 아이의 얼굴엔 기분 나쁜 미소가 스쳐 지났고 살짝 소름이 돋았다. 저런 모습으로 어른이 되면 악마로 변할지를 모르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였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생각은 자유니까. 아니면 위인이 될지 나중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수많은 위인들 중에도 과거에는 마약, 도박, 장애인 등 시행착오가 많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종소리가 울리자 이번엔 물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칠판에 글을 쓰려고 분필을 찾았다. 교탁위의 분필통이 보이지 않자 선생님은 허리를 굽혀 교탁 밑에 손을 밀어 넣었다. 순간 뭔가 닿이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시더니 재빨리 손을 꺼냈다. 머리를 숙이고 밑을 향해 조심스레 들여다보시더니 분필통 안에서 장난감 뱀이 꿈틀거렸다. 선생님은 간신히 마음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얘들아, 혹시 오늘 만우절이니? 이 깜짝 서프라이즈가 전혀 맘에 안 드는데.” 하고 재치 있게 받아넘기셨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칠판을 향해 돌아서자 칠판 꼭대기에 장난감 소머리가 커다란 눈으로 아래를 향해 내려다보고 있었다.


“혹시 올해가 소해이니? 아니면 너희들이 소띠니? 이 소머리는 생각보다 못생겼네.”


선생님의 재치 있는 유머와 말솜씨에 아이들은 그제야 참아왔던 폭소를 터뜨리면서 웃어댔다.

다음 날, 물리수업이 시작되기 전 형권은 그날의 작전이 썩 내키지 않자 종이 울리기 전 문을 비스듬히 열어놓았다. 양동이에 물을 담아 의자를 딛고 서서 문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이제 물리 선생님이 문을 여는 순간 그 물이 선생님의 온 몸에 뿌려질 터이다. 반에 반장이 있었지만 공부에만 모범생일 뿐이지 반 관리는 영 부실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아이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드디어 종소리가 울리자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선생님의 발걸음소리에 심장이 긴장하게 조여 왔다. 선생님이 문 앞까지 오셔서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순간 마침복도를 지나가던 교장선생님이 부르시는 바람에 물리 선생님은 문만 열고 앞으로 옮겼던 발걸음을 뒤로 젖히면서 온 정신을 집중해 교장선생님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까 선생님의 손힘에 살짝 닿였던 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순간 양동이에 담겨져 있던 물이 통째로 바닥에 “쾅”하고 떨어졌다. 그 소리가 온 교실과 복도에 세차게 울려 퍼졌다. 선생님들은 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였고 양동이 안에서 쏟아진 물은 교실바닥을 물판으로 만들어놓았다. 교실 문 근처에 있는 아이들은 너도나도 바닥에서 양쪽 발을 떼어내려고 발버둥질을 쳤고 신발을 젖게 하지 않으려고 비명을 질러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신 것 같은 교장선생님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엇을 결심한 듯


“너지?” 하고는 형권이를 보고 당장 교장실로 따라오라고 명령하였다. 그 후로 상세한건 기억에서 희미하게 멀어져갔지만 중학교2학년 때쯤 퇴학을 결정한 것 같았다. 기억이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내가 고등학교에 졸업할 즘인가? 어느 날, 친구 집에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길을 지나가던 남자가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얼떨결에 인사를 받은 나는 그제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을 알아보았다. 뭐랄까. 그 기분. 기쁘기도 하면서 기쁘지 않은, 반갑기도 하면서 반갑지 않은. 바로 그 아이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선생님들을 괴롭힌 아이 말이다.


비록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형권은 키가 크고 덩치만 자랐을 뿐 예전보다 달라지거나 변한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조금 달라 보이는 게 있다면 어릴 때보다 조금 성숙해진 말투와 부드러운 행동에서 친밀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갑자기 친절하게 다가오는 그 아이의 모습과 아는 척하는 행동에서 부자연스러움을 느껴 나는 어색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한순간이라도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이게 대체 얼마만이냐며 최근 내 근황을 물어보기도 하고 또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해주기도 하였다. 알고 싶지 않은데도 말이다. 내가 부랴부랴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뜨려하자 그 아이가 뜬금없이 자신이 안은 강아지가 새 주인을 찾는 중인데 키울 생각이 없냐고 하였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복슬복슬하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귀여운 새끼강아지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떨어져 새 주인을 찾아다닌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과연 얘를 데려다 잘 키울 수 있을까? 때론 내 몸 하나도 씻기 귀찮아하고 먹기도 귀찮아하는 게으른 내가? 그리고 매일매일 학교 가는 사이 심심해하면 어쩌지? 아직 아기인데. 따스한 손길이 필요한데.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형권은 내 팔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아까 시장을 지나가다가 새끼 강아지가 배고플 가봐 사료를 샀는데 집을 급하게 나오는 탓에 지갑을 두고 왔다고 하였다. 그러니 돈이 있으면 조금만 빌려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배가 고팠을 강아지를 보고 마음이 못 견디게 아팠다. 나는 사료 값이 얼마냐고 물으면서 호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2만원이 조금 넘게 있었다. 그 아이는 그 돈을 다 받고서 조금 모자라다고 하였다. 여기서 꼼짝 않고 기다릴 테니 집에 가서 모자라는 만큼 조금만 더 빌리라고 했다. 순진한 건지 바보멍청인 건지 나는 알겠다고 하고는 5층에 위치한 집을 향해 헬레벌떡 뛰어올라가 평일에 조금씩 모아놓았던 돈을 얼마정도 챙기고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 자리에 멈춘 나는 그대로 멍하니 서있었다. 그 아이도 강아지도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냥 헛웃음을 지으며 걸으면서 어리석은 내 자신을, 카페의 유리창을 통해 발견하였다. 그렇게 나는 2만원어치의 인생교훈을 배웠고 사기를 당한 첫 경험을 해보았다. 어쩌면 그 2만원이 내 인생의 첫 발을 내 딛는 소중한 경험이었을 테고, 어리석고 무지한 내 자신을 일깨워주는 첫 가르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반겨주었던 자리에는 서늘한 그림자가 비껴지나갔다. 나는 그저 귀여운 새끼강아지가 좋은 주인을 만나고 착한 주인들의 좋은 모습만 보면서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랄뿐이다. 우리는 인생을 변덕쟁이 날씨처럼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기도 한다. 가끔은 제 맘대로 자라고 싶어 하고 스스로의 생각대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면서.


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가 곧게 자라면 아름다운 가지를 뻗어 그 열매도 달콤하다. 만약 삐뚤어진 자세로 자라면 줄기도 삐뚤어지게 뻗게 되고 그 열매도 일부분은 썩거나 생긴 모양이 예쁘지 못하다. 그러면 뿌리도 든든하게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람도 나무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뿌리가 든든하고 아름다우면 행복의 열매가 도처에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 썩으면 인생이 점점 메말라가고 시들어져 간다. 그날의 경험과 기억이 나를 얼마나 어리석고 쪽 팔리게 만들었는지 생각만 해도 창피하다. 먼 과거의 삶을 잊고 살았는데 글쓰기는 내 모든 것을 기억해냈고 오래 잊고 살았던 일들을 수면 위에 가볍게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어쨌든, 댔고. 이자는 안 받을 테니 내 돈 내놔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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