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평등한 삶이 가능성을 열어준다

by 조수란

작은 아이가 무서운 꿈을 꿀 가봐, 불을 끄기 전, 내가 물었다.


“만약 꿈속에서 무섭거나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다시는 무섭지 않을 것 같아요. 엄마. 이제부터 두려움에 도망가지 않고, 받아들이고, 직시하면서 맞설 거예요.”


아이를 지켜주기 위한 마음은 굴뚝같지만, 꿈속에까지 따라 들어가 지켜주지 못하게 되는 미안한 마음에 자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작은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혼자서 두려움에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다.

금방 작은 아이가 대답하기 바쁘게 큰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왜?”


“아니 엄마라고.”


“뭐가?”


“무서운 게.”


“그럼 두 번째 무서운 건?”


“엄마.”


“세 번째는?”


“엄마.”


갑자기 내 발이 태권도 자세로 위엄 있게 큰 아이를 향해 공중에 날렸다. 뜬금없이 큰애의 오른 손이 ‘가위’를 내밀었다. 그러니까 내 널따란 발이 ‘보’가 된 셈이다. 내가 못생긴 발로 주먹을 내려고 발에 안간힘을 내어보지만 두껍다란 발이 ‘바위’로 변할 리가 없다.


“안되지롱. 헤헵.”


큰애가 밉살스럽게 굴었다.

어느새 내 주먹이 큰 아이의 머리를 향해 한방 날리려고 휘두르는데, 이에 맞춰 커다란 머리를 내 앞으로 쏙 들이밀었다. 허, 정말 어이없게도 팔을 내려놓는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둥근달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고 아름답다. 나는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다말고 하늘을 보며 말했다.


“내년쯤에 코로나가 잦아들면 외할머니가 오신대.”


“정말? 와 신난다.”


작은 아이는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다.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 품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는 엄마와 다름없는 존재다. 갑자기 둘째가 말했다.


“오빠, 그러고 보니 내년이면 고등학교 학생이 되겠네.”


“응, 그래. 너도 그때가 반드시 돌아 올 거야. 기다리지도,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없이 흘러가고 마중 오는 게 시간이란다.”


큰아이가 마치 인생을 다 살아본 어른처럼 말했다.


“응, 그래. 어쩔.”


작은 아이도 지지 않을 세라 자기 앞의 말을 꼭 하고 마는 스타일이다.

아이들이 지금처럼 옥신각신 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가끔 다른 집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무슨 상황에서든 꼭 저렇게 둘이 티격태격 하면서 다툰다. 우리 집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와 공간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과 조금만 불일치하다 싶으면 논쟁을 벌인다.


그러다가 또 학교에서 누구라도 먼저 오게 되면 또 원수 같은 서로를 먼저 찾는다. 혹시라도 학교에서 맛있는 것을 나누어주면 큰아이는 먹지 않고 집에 가지고 와서 동생 오면 주겠다고 하면서 냉장고 안에 넣어둔다.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간식이 있으면, 오빠가 좋아하는 젤리라면서 먹지 않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큰아이한테 내민다. 그럴 때마다 외동으로 혼자 자라온 남편은, 그 장면을 보고


“형제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라고 쓸쓸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일 년 사계절이 있듯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우리 가족에게는 아무 때나 찾아오는 마음의 계절이다.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의 책에서는 성별뿐 아니라 형제간에도 차별을 두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고 나이가 위든 아래든 다르게 대우하지 않는다. 어떤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아이 그 자체를 바라보고 인정할 때 아이의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고 하였다.


우리 집에서만 해도 그렇다. 취미나, 개성이나, 성격이나, 살아온 삶이나, 경험이나, 나이가 전부다 다르다. 서로의 다름에서 서로를 들여다보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서로를 사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가 불평불만 할 때면 받아들이는 방식과 생각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형이라고 해서 동생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잔소리나 꾸지람을 하거나, 명령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동안 부모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사고방식과 습관들을 이어온 탓에 그것들을 쉽게 바뀔 수가 없다. 그러고보니 큰아이도 우리한테서 물려받은 안 좋은 습관들을 고쳐나가야겠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나도 스웨덴부모처럼 아이들을 평등하게 키우고 존중하고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이끌어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떨 때에는 너무 평등했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 자기만의 주장이 강했고, 엄마와 아빠에 대한 삶의 의견도 서슴없이 털어놓곤 하였다. 부모라서 더 잘하고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대신, 지금처럼 배우면서 조그마한 실천으로부터 시작하여 아이들과 함께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소통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듯싶다.


몇 십 년을 살아온 성격과 생각들을 하나씩 뜯어 고치고 내 삶을 다시 성형시켜야 했다. 생각의 회로를 바꾸자면 지금껏 살아왔던 프로그램을 다시 깔아야 했다. 낡은 사고방식과 나사들을 풀어내어 그 속의 녹이 쓴 삶의 부품들을 하나하나 교체해야 했다. 그 동안 배울수록 부족한 삶의 기술을 터득하는 과정에서 오늘도 파면 팔수록 커지는 구멍처럼 배울 것이 늘어나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하나하나씩 배우면서 실천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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