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한 곳에 파묻혀 글을 수정한답시고 다시 쓰고, 쓴 걸 또 읽고 수정하면서 컴퓨터 앞에만 파묻혀 있었더니,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현실에 돌아오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세종시에 사는 친척동생이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친척집에 놀러 가면 우리는 서로 친하게 잘 지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장사를 하는 그녀에게 내 책을 사달라고 부탁해야겠다.
통화하는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요즘 옷 장사를 하는 동생의 SNS에 들어 가보니 화려한 옷들이 눈부셨다. 그중에서 맘에 드는 옷을 골랐는데 언니라서 7만8천원만 내라고 한다. 비록 나한테 비싼 가격이지만 어쩌겠나? 친구 같은 동생이고 오랜만에 만난 나는 10만원을 입금해주기로 하였다. 책 한권 팔려다 옷 두벌을 샀다. 그 동안 첫 책을 낸 기념이라 한답시고 나를 위해 쿨 하게 선물한다.
두 번째 친척 동생은 나와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이름은 은희다. 그래서 더욱, 동생보다 친구 같고 때론 언니 같아서, 우리는 힘들 때면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기쁠 때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면서 어릴 때부터 오랜 정으로 이어온 사이다. 은희는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그 점에서 우리는 닮았다. 신기한 것은, 우리 둘 다 첫째가 아들이고 한 살 차이가 난다. 둘째의 딸들도 한 살 차이가 난다. 때문에 우리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 놓을 때가 많다. 우리 두 가족이 어쩌다 명절에 한 번씩 만나기라도 하면 한 살 차이가 나는 사람들끼리 제각각 짝을 지어 놀기도 한다.
지구반대편에 사는 은희랑 영상통화하면서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웃고 떠든다. 은희가 안경너머로 눈을 비비면서 전날 딸과 함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어제 갑자기 오른쪽 눈에서 살짝 출혈을 했다고 한다. 너무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조금 심각하다고 했다. 병원을 늦게 찾았으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주사를 맞고 눈약을 넣고 나오면서 다른 건 못 봐도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할 생각을 하니 순간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그녀는 작은 딸을 꼭 안아주면서 엄마가 하마터면 앞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단다.
“엄마가 정말로 앞을 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라는 물음에,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둘째가 온 밤을 자지 않고 우는 탓에 아침에 깨어나 보니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더란다. 세상에, 생각이 깊은 아이기도 하지. 엄마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이 담긴 아이를 떠올리면서 기특하기만 하였다.
하루 종일 피곤에 지쳐 잠을 청하려고 누운 아이들을 보면서 내 마음 어디선가 부터 어떤 의문이 슬며시 고개를 내 밀더니 참을 수 없는 궁금증들이 파도처럼 넘실댔다. 그래서 내가 결심을 한 듯 뜬금없이 물었다.
“다윤아, 만약에 엄마가 시력이 안 좋아서 앞이 안보여. 그러면 다윤이는 어떻게 할거야?”
순간 근심이 잔뜩 쌓인 얼굴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던 작은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만약, 엄마가 앞이 안 보여 밥을 못하면 어떻해? 그리고 다윤이가 양말을 잘못 신으면 누가 다시 신겨줘?”
“헐, 대박.”
큰아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야, 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엄마가 앞이 안 보인다는데 밥을 못 먹을까봐 네 걱정부터 하다니.”
“아니, 오빠는 좀. 당장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엄마를 밥 먹여 준다니까.”
“그럼, 밥은 누가 하는데?”
“당장은 오빠가 해야지. 난 그동안 엄마를 안마해드리고 어른이 다 된 것처럼 행동할거야.”
참 현실적인 생각이긴 하다. 내일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당장이 중요하니까.
한참을 오고가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앞으로 아이들과 예쁜 말과 존칭을 사용해 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엄마인 나부터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 집에서는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예쁜 언어를 쓰세요.”
큰아이가 갑자기 질색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 제발 하지 마. 어색해서 못살겠다고.”
“그럼, 살지 마.”
“엄마, 진짜 갱년기가 온 거 아냐?”
갑자기 작은 아이가 끼어들면서 말했다.
“엄마, 우리한테 왜 그래? 벌이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나 지금 갑자기 엄마가 무서워졌어.”
내가 버럭 화내면서 말했다.
“아니, 존댓말을 하는 게 어째서? 얼마나 듣기 좋은데....요, 뭐 그 정도로 심각해....요?”
아이둘이 뒤로 자빠지면서 귀를 막았다.
“나, 지금 누구 집에서 살고 있는 거니? 여긴 어디야?”
“오빠, 오버 하지 마. 여긴 당연히 집이지.”
“너희 둘도 지금부터 서로 존댓말을 해...요.”
“아, 갑자기 더워지네. 엄마, 에어컨이 안 되면, 선풍기, 깐풍기라도 틀어줘....요.”
“시끄럽고요. 너네도 빨리 자세요.”
“엄마, 거래하자...요.”
습관이 되지 않는 큰애가 버벅거리며 말했다.
“뭘요?”
“엄마가 만약에 한번이라도 반말을 하면 벌칙내리기.”
“뭔데...요? 그 벌칙이?”
“나에게 디제이기계 사줘.”
“그 전에 내가 뒤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따라 감사의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날인 것 같다. 전등을 끄고 아이들이 행복한 꿈나라에 여행하길 바라면서 슬며시 눈을 감았다. 갑자기 엄마가 그리워졌다. ‘만약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앞이 보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과연 아이들처럼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하룻밤 울고불고 했을까? 그리고 끼니마다 엄마를 밥 먹여주고, 안마시켜드리는 효녀가 되었을까?’
당연히 그리하였을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유일하고 아름답고 멋진 위대하신 분이니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를 간호하면서 많이 느꼈다. 매일 엄마의 배변을 받아내면서 엄마도 우리를 이렇게 키워주셨구나 하면서 아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더군다나 병상에 하루 종일 누워있으니, 얼마나 갑갑하고 아프실까. 그때까지 아무리 철이 없어도 한편으로는 엄마에 대한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지금 엄마를 해보니, 때론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깊을 때가 많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소중한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을 만큼 내놓는 위대한 존재들이니까.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
이라고 했다.
부모와 자식사이의사랑, 남녀의 사랑. 이 세상의 소중한 모든 사랑.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이 세상 그 무엇이라도 초월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갖추고, 무엇과도 바꿀 수 도,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빛을 지닌 눈부신 존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