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욕심이 나쁜 것이 아니다

by 조수란

아이들이 잠이 든 어느 날 밤, 남편과 둘이서 시원한 맥주 한잔했다.

맨 처음 만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짜릿했던 감정들을 이야기 할 때마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기분 좋은 이야기와 설레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지나간 세월과 함께 가슴이 뛸 정도로 처음처럼 두근두근 설레지는 않지만, 그 동안 함께 했던 순간들이 모여서 깊은 정으로 쌓였고 서로를 아껴주고 배려해주는 가족으로 변신했다.


과거의 달콤한 추억을 안주로 삼아 서로의 매력을 뿜뿜 떠올리던 중, 그 와중에 텔레비전 에서 지나가던 영화의 대사가 귓가에 스쳐지나갔다. 문뜩 정신을 차리고 화면에 눈길을 돌리니 어느새 그 장면이 지나가고 대신 광고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술을 얼큰하게 마신 뒤라 이미 지나가버린 기억의 필름을 다시 재생 하면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대사를 곱씹어 보았다. 말하자면 뜻이 대략 이렇다.

한 마리의 고슴도치가 있었는데 너구리와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우리 친구하자.”


겨우 용기를 내어 너구리에게 고백했는데 뜻밖에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러면 너의 몸에 있는 가시부터 전부 빼버려. 그러면 우린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어.”


너구리는 고슴도치와 가까이 하고 싶지만 몸에 있는 가시에 자신이 다칠까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고슴도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안 돼. 가시가 없으면 나는 고슴도치가 아니야. 고슴도치의 본질을 잃어버려. 자연을 거스르면서까지 살 순 없어.”


그러자 너구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너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고슴도치의 입장이 참 난감한 상황이다. 친구는 되고 싶고 가시는 빼기 싫다는. 너구리도 친구는 되고 싶지만 가시를 빼지 않으면 함께 하기 싫다는.


이 두 상황을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를 하지 않고 서로의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다.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불덩어리가 있다. 만지니 뜨거웠다. 너무 뜨겁다고 아우성치니


“놔라.” 그래 어떻게 놓는데요? 그 불덩이를 놓는 방법을 몰라서 놓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갖고 싶어서 놓지 못한다.


뜨거우면 그냥 놓으면 되는데 집착과 욕심이 과해서 그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뜨거우면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내려놓으면 되는 거였다. 스님께서는 욕심을 가져도 된다고 하셨다. 욕심을 부리는 이유는 나한테 이익이 되려고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욕심을 부려서 이익 되려고 하는데 과한 욕심이 생겨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괴로워진다. 그러니까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이렇게 알기 쉬운 방법을, 정작 내 삶에 적용하면 말처럼 쉽지가 않고 생각처럼 잘 되지가 않으며 괴로움이 가셔지지 않는다. 머리로는 잘 이해하면서 정작 두려움의 집착과 게으름의 유혹에 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위의 고슴도치와 너구리처럼 욕심 한가지만을 내려놓아도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고슴도치는 몸의 가시를 빼버리면 되고, 너구리는 고슴도치의 가시를 받아들이면 된다. 친구가 되고 싶으면서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할 때가 많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고, 열심히 일하여 승진도 하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가고 싶다. 물론 내가 내 삶에 만족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이루면서 욕심을 내는 삶이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과한 욕심 때문에 내 마음이 괴로움에 시달리고 우울해진다면 그건 욕심이 아니라 집착이 아닐까 싶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말 잘 듣고, 아프지 않게 잘 자라주길 바라고 하나뿐인 남편이 돈 잘 벌어오고 어떤 상황에서든 내편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정성을 쏟아보지만, 바다의 소금물을 마실수록 갈증을 해결하지 못한 것처럼 목마를 때가 많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과한욕심이라는 불덩어리를 내려놓을 때, 마음은 한층 가벼워지고 시원해지고 감사해진다. 욕심은 나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욕심이 내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고 발판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론 그 욕심이 너무 과해서, 내 마음이 괴롭고 상처받을 때 그건 욕심이 아니라 집착임을 빨리 깨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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