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중요한 일이 생겨서 서울에 올라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앞좌석에 앉은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옆에 앉은 엄마에게 귀여운 발음으로 호기심을 참지 못해 쉴 새 없이 질문을 하였다. 하늘에 나는 새에 대하여, 아름다운 산에 대하여, 숫자놀이에 대하여 그러다가 목적지에 언제쯤 도착하는 지에 관해서도 끊임없이 옹알이를 했다. 아이의 끝도 없는 질문에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졌다. 대답하기도 바쁘게 질문이 쉴 새 없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옆에 앉은 엄마에게서 싫증이나 지겨움이라는 표정을 어디에서든 찾아 볼 수 없었다. 인내심 있게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시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역시 대단하고 인내심이 많은 엄마에게 엄지 척을 내밀면서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나도 내 아이가 저렇게 끊임없이 질문하면 똑같이 잘해주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이 세상 엄마가 자식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깊은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마음속으로부터 깊은 감동이 솟아올랐다.
그러던 아이들이 커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어느 순간부터인가 전에 보여주었던 엄마들의 인내심과 참된 교육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얼떨결에 부모가 시키는 여러 개의 과외를 시작하면서부터 착한 아이가 되어갔다. 그런 아이의 마음 또한 지겹고 스트레스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의문과 질문이 조금씩 사라가기 시작하였다.
얼마 전, 도서관을 방문했다가 ‘엄마의 인 강’이라는 강연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참가하게 되었다. 강연을 듣고 느낀 것은 그 동안 항상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한테 소홀히 대해왔던 나를 돌아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매일 학교와 집이라는 틀에 갇혀 습관이 되어온 아이들도 무덤덤해져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엄마라는 믿음하나로 검소했던 생활을 잘 견뎌내 건강하고 기특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오늘 나는 ‘엄마의 인 강’을 듣고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 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가기 싫다는 학원도 억지로 보내고 먹기 싫다는 아침밥을 입안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아파서 하기 싫다는 운동도 언성을 높여가면서 강요해왔다.
김태윤 작가님이 쓴 ‘유대인 교육의 오래된 비밀’에서는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고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고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고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고하였다.
나는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어리석은 내 행동에 후회의 아픔이 고개를 들이밀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상처를 빨리 보듬어주고 긁어내 주는 게 우선이었고 따뜻한 관심과 소통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주고 호호 불어주어야 해야 했다. 예전에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화풀이 대상이 작고 나약한 아이들한테로 화살이 날아가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마음을 콕콕 찔러 아픈 상처를 만들어 놓은 적이 많았다.
우리의 정신은 책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간다면 아이들의 맑은 영혼은 사랑을 먹고 자라나지 않은가? 오늘 날,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 자신을 돌아보고 들여다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행이 독서를 통해 학대하는 학부모가 아닌 학습하는 부모로, 보호자로 다시 태어나는 감사한 순간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나쁜 아이가 없다. 모든 아이들이 하나같이 소중하고 천사 같은 존재다. 키가 크거나 작고, 곱거나 밉고, 잘하거나 못하고 없이 모두 다 소중하고 평등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삶이라는 인생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사회, 부모, 학교의 교육이 아이들의 배경을 그려주고 여러 가지 삶의 모양을 익혀주면서 성격과 습관이 형성되면서 많은 영향을 준다. 모든 아이들을 세로로 세우면 1,2,3등이 존재하지만 가로로 세우면 모두다 1등이 되는 것처럼 한 아이의 일부분만 보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고 하였다. 아이들마다 개개인의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고 반짝이는 별처럼 신비한 세계를 지니고 있다. 아이들의 완성된 삶이되길 위하여 그 빛을 발견하고 찾아주고 기다려주는 것 또한 어른인 우리의 몫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주고 소통하는 방법이나 인내심이 필요한 지금이다.
집중력이 약한 아이는 창의력이 뛰어날 수 있고, 걸음마가 느린 아이가 생각의 능력이 탁월한 것처럼, 아이들이, 저마다 달리는 방향이 틀리고 생각의 속도가 다를 수도 있다. 무엇이라도 받아들이는 방법과 습득하는 과정이 모두 다 제각각이다. 때문에 알록달록한 세계의 여러 가지 꽃봉오리들이 한데 모이면 서로 다른 매력을 빛내듯이 더욱 예쁘고 환하면서 서로 다른 빛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복숭아꽃, 살구꽃, 민들레꽃과 같은 수많은 꽃들도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지만 똑같이 예쁘고 아름답다. 이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저마다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 서로 다른 생김새,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습관과 행동을 가진 자기만의 특징을 지니고 있고 자기만의 빛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일찍 피는 꽃과 늦게 피는 꽃이 있다. 이 두 가지의 꽃이 피는 속도가 서로 다르지만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내고 아름다운 시절을 갖고 태어난다. 우주의 모든 만물이 때가 있듯이 아이들도 자신들만의 꽃이 피는 때가 있다. 우리는 미래의 꽃봉오리들이 빨리 피길 재촉하는 대신 그 꽃이 스스로 자유롭게 피어날 때까지 묵묵히 지켜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된다.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맘껏 빛내려고 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