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인간관계에 서투른 나는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넘어지기만 한다. 여기저기 멍든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사람의 한마디 말에도 쉽게 걸려 넘어진다. 혹시라도 내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회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삶이라는 무덤에 내가 언제 잘못한 거라도 있나, 라는 의심을 심어놓기 시작하니 가시에 찔린 것처럼 마음이 아파왔다. 영문을 모르는 상황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던 자존감이 고개를 기웃거렸고 함께 했던 자신감이 행복을 데리고 어디론가 슬금슬금 도망을 갔다.
그 동안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살다보니 인간관계를 소홀히 해왔던 터였다. 하지만 오늘날, 무슨 글을 쓴답시고 흩어진 관계를 다시 복구하려다가 그전에 먼저 지치고 다친 내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생각의 정리부터 필요한 순간이다.
지금은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책을 쓰고 싶다고 하자, 원래대로 살라고 권하는 사람, 책은 아무나 쓰나? 라고 콧방귀를 뀌는 사람, 이 나이에 무슨 책을 쓰냐? 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 그냥 무뚝뚝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라는 파도에 쉽게 휩쓸려 가지 않듯이,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지키려고 노력해 보지만, 보이지 않는 앞날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오히려 이런 말들이 도처에서 쏟아져 나올수록 어쩌면 나에게 발판이 되어 나는 꼭 쓰고 싶은 사람, 써야 되는 사람, 어떻게 하나 꼭 쓸 거라고 다짐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이와 반대로
“책을 쓴다고? 정말, 멋있다.”
라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동안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를 들면 생각의 정리, 관계의 정리, 상황의 정리와 같은 삶의 정리와 주변의 정리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갔다. 그러니까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멀리 하였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 더 이상 내 마음에 함부로 상처를 내주지 않도록 허락하지 않는 사람으로 되어가기로 결심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혼자만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우리가 살아가는 먹는 것, 입고 있는 것, 사용하는 것마저 다름 사람들이 만들고 발명하고 창조해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삶이 풍요로워 질수록 생각의 그늘은 더욱 인색해지고 언제 어디에서 손해 볼까 두려워 마음에 계산기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때문에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지고 운명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삶이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아도 마음만은 넓고 따뜻한 세상인 것 같았다. 그때는 호주머니에 돈이 별로 없어도 있는 만큼 나누어 먹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받아주면서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나에게도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그런 친구가 있었다. 비록 같은 반이 아니지만 때론 언니처럼 친구처럼 잘해주던 아이였다. 이름은 지미화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그 이름, 지금 부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친구다.
그때 학교를 졸업하기 전, 갈 곳이 없어서 갈팡질팡하는 나를 그 친구가 받아주었다. 어릴 때부터 양부모의 밑에서 자란 그 친구는 동생 두 명이 있었는데 한명은 많이 아파서 어머니와 함께 깊은 산속으로 요양을 떠났고 한 명은 미화가 데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미화랑 동생이랑 세 명이서 한 지붕 밑에서 친자매처럼 울고 웃으며 친하게 살았다. 아침이 되면 미화는 항상 따뜻한 밥을 나와 동생에게 먼저 주고 자신은 묵은 밥을 먹었다.
내가 아프면 약국에 가서 감기약을 사주던 언니와 같은 잊을 수 없는, 지금 생각만 해도 보고 싶고 눈물 나게 만드는 그리운 존재다.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는 내가 그때 밥값이라도 한 기억이 없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나를 친자매처럼 진심으로 잘해주고 받아주다니.
주말이면 우리는 조그마한 칼과 비닐을 들고 산나물 캐러가고, 가끔 자전거를 타고 미화가 출근하는 영어학원에 놀러 다녔다. 어릴 때부터 많은 고생을 해온 미화는 유난히 정이 많은 아이였다. 그렇게 그 아이랑 함께 오래지내다가 어느 날 우리는 할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동생이 대학에 붙게 되면서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자 미화는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어 동생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 멀리 떨어진 큰 도시에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미화가 떠나는 날,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먹였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꿈같은 현실을 서로 받아들였다.
그때 그 친구의 따뜻한 관심과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어디에서 헤맸을까? 미화는 지금도 내 인생에서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친구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이런 친구들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지금은 서로를 비교하고 서로에게 상처주면서 세상이 풍요로워질수록 정신이 빈곤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의 책속에서는 ‘친구는 한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너무 많고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어머니가 한사람, 아버지가 한 사람이듯 친구도 한 사람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우정도 이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친구가 한사람이면 족하다. 나머지는 아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너무 큰 반지가 쉽게 빠지고 너무 작은 반지는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다가 오히려 손이 아프기 마련이다. 그렇게 계속 끼다보면 언젠가는 나와 딱 맞는 스타일의 반지가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아니면 내가 먼저 찾아 나서서 먼저 주고 나한테 어울리는 반지를 고르면 된다. 내가 먼저 진심으로 내 주어야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생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이 친구도 그렇다. 너무 돈이 많고 화려한 친구는 쉽게 멀어질 수 있고, 속이 비좁고 집착이 강한 사람은 억지로 친구가 되어봤자 지쳐만 간다. 우정도 천천히 자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여주면서 비싼 선물보다 힘들 때 옆에 함께 있어주고, 화려한 칭찬보다 따뜻한 위로와 작은 한마디의 말을 주고받으면서 묵묵히 들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이지 않을까 싶다. 때문에 남에게 잘 해주고 잘 보이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상처를 받지 않는 보호막으로 내 마음을 감싸주는 게,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고 나를 사랑하는 밑받침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