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하여 남산공원을 찾았다. 아름다운 자연에 몸을 담그면 신기하게도 세속에서 벗어난 것처럼 홀가분한 느낌을 받는다. 그 동안 엉켜진 생각의 회로들은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에 취한 듯 머릿속의 줄기들이 나른해져가면서 뒤엉킨 밧줄이 서서히 풀어지기라도 한 듯, 온 몸이 편안해져갔다.
아름다운 산은 눈부신 햇빛이 나무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면 반갑게 맞아주고 아름다운 새들이 온 산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도록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 조용히 귀 기울이며 들어준다. 작은 개미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매달려 놀기라도 하듯이 지켜봐주고 달래주기도 한다. 저 멀리서 새끼 뱀이 혹시라도 놀라 도망가기라도 하면 무성한 풀숲이 초록치마 밑에 꽁꽁 숨겨두고 보호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한 마리의 토끼도, 다람쥐도, 아름다운 꽃과 잡초도 전부다 자연이 품어주는 땅위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나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어느덧, 산 정상에 올라서니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 나를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내 영혼은 시원한 바람이 되어 나무위로 넘실넘실 춤을 추며 날아다녔으며 저 멀리 보이는 앞바다의 공중에서 갈매기들과 함께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날아다니는 잠자리와 친구가 되어 숲속을 여행하였으며 지나가는 꿀벌과 함께 꽃을 찾아 부지런히 꿀을 채집해보기도 하였다.
노랑나비 하얀 나비들과 친구가 되어 외롭지 않았으며 따뜻한 자연에 조그마한 내 몸을 기대고 있으니 어릴 때 내가 살던 고향을 찾아온 듯, 산속의 싱그러운 풀과 흙의 익숙한 냄새에 포근하고 편안하기만 하였다.
이처럼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연을 사람들은 어머니라고 부른다.
나는 오늘만은 저기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울창한 풀숲으로 뒤덮힌 산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다. 바다라는 어머니는 내면에 모든 자식들을 품고 산다. 깊은 사랑으로 묵묵히 지켜주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눈물 속에 자식들을 품고 살아간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유로이 헤엄을 치며 엄마의 사랑과 눈물을 마시면서 자라난다.
어떤 자식들은 가끔씩 해변에 나와 세상을 잠깐 구경하다가 다시 어머니의 품속으로 기어들어가기도 한다. 처음엔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두려워서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가 나중에는 반복되는 걱정이 습관이 되어 어머니를 떠나 한 순간도 살수 없을 만큼 오래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바다 속을 향한다. 혹시라도 바다라는 어머니를 떠나 육지에 올라오면 갑갑하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어머니라는 바다를 떠나 살수 없다. 그렇게 어머니의 품속에서만 애지중지 키워왔던 자식들이, 이제는 어머니를 떠나 한 순간도 살수가 없게 되었다. 바다라는 어머니는 바다 안에서 품은 자식들을 영원히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산이라는 아버지는 자식들을 마음속으로는 사랑했지만 바다의 어머니와는 반대로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산이라는 아버지는 자식들을 너도나도 받아주고 지켜주면서 모든 아이들을 품어주었지만 바다의 어머니처럼 집착이나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바깥에서 맘껏 뛰놀게 하기도 하고 모든 형제들이 옥신각신 다투어도 똑같이 사랑하고 평등하게 대해준다. 때문에 땅위에서 자란 자식들은 기어 다니다가 뛰어다니다가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면서 자신들만의 개성과 빛을 잃지 않았다. 언제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꾸며가고 꿈을 맘껏 펼쳐나갔다. 산과 바다는 항상 가까이 바로 옆에서 함께 살고 있다.
산 옆에는 바다가 있고 바다 옆에는 산이 있듯이. 산이라는 아버지가 평등하게 키워낸 자식들은 어디에서도 살 수 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고 땅을 파고 땅속으로 기어들어 가기도 하면서 바람과 햇살과 공기와도 모두 다 어울리면서 친구가 된다.
이렇게 넓은 대자연에서도 서로 상반되는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내 눈앞에 느껴지고 보여 지는 것처럼 우리 집에서도 그랬다. 바다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삶속에 있는 나를 연상케 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나는 배안에서 열 달을 키워온 두 아이밖에 모르고 살았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맴돌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우고,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돈을 벌수 있을지 궁리만 해오면서 모든 에너지를 가족을 위해 쏟아 부었다. 이와 달리 남편은 가족과 사회라는 모든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균형 있게 자신만의 삶을 운전해 나갔다.
오늘 날, 글을 쓰게 되면서 그 동안 살아왔던 내 삶들이 종이위에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모르고 지내왔던 부분을 한층 깨닫게 되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그 동안 가족다음으로 친구와 동료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다닐 때 퇴근하면 배터리 잔량이 부족할 때까지, 에너지가 바닥이 닳을 때까지 통화를 하였고 주말이 되면 다 같이 모여서 술 한 잔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동안 책을 쓴답시고 외부의 모든 연결을 차단하면서 글쓰기에 몰입했다.
그 동안의 부족한 자신을 잊고 3개월이라는 도전과 노력 끝에 드디어 내 이름으로 된 한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친구들이 하나 둘 알게 되면서 축하해주는 말만 하는 친구들이 있는가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때문에 친한 사람들한테도 책 한권 사달라는 말을 입 밖으로 쉽게 내뱉지 못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남편은 친구한테 연락하면서 우리 집사람이 책을 썼다고 하니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면서 열권을 사고 싶다고 흔쾌히 나섰다. 다음친구, 그 다음 친구들도 열권씩 주문을 했다. 단 5분도 되지 않는 사이 50권을 팔았다. 헐, 대박. 같은 지붕 밑에 살면서도 인간관계가 이렇게 상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사춘기에 들어선 큰아이의 친구들도 그랬다. 같은 반에 다니는 엄마가 책을 썼다고 하니 어디에서 사면되는지 전화나 문자가 쉼 없이 울렸다. 분명히 책을 쓴 사람은 나인데, 그런 나에게는 내 책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아이의 친구들이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구매를 하였고 남편의 친구들도 회원가입을 하느라 바빴다. 그 중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과 기계는 나와 내 휴대폰이었다. 이 두 사람은 평일에 가족밖에 모르는데 어째서 인기가 이렇게나 좋단 말이지? 그 동안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는 작아지기만 하였다. 그러면 나는 정말 헛되이 산 사람인걸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만약에 내가 죽으면 내가 그 동안 지내왔던 친구나 동료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날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 같다.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나를 위해 눈물은 흘릴 사람은 더더욱 없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동안 그들에게 스쳐 지가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발견하는 순간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되었고 또 다시 지나간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성공한 삶을 살았을까? 실패한 삶을 살았을까?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걸까? 이익만 따지면서 마음에 계산기를 달고 사는 사람이었을까? 그 동안 내 딴에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가면서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였던 게 착각이었던 걸까? 밭에 씨앗을 뿌린 것만큼 거두고 내가 베푼 것만큼 끌어들인다고 했는데 그 동안 나는 뿌린 것도 베푼 것도 없는 아주 작은 사람에 불과 하였을까?
오늘 나는 산과 바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디선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귓가에 살며시 말을 걸어왔다. 인간관계에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언젠가는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나타날 거라고.
지금 겪는 이 상처와 경험과 생각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내 삶에 정리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자연의 소통과의 생각을 마음에 담고 산을 걸어 내려오는 순간 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 오자마자 관계의 정리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였다. 부질없는 카톡과 오래된 연락처를 삭제하고 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메시지도 전부 차단해버렸다. 그렇게 삭제하고 차단하면서 남게 된 중요한 번호들을 보면서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남은 번호는 가족과 몇 안 되는 친구들이었고 다음으로는 전부다 글쓰기 멤버님들과 작가님이었다. 이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었고 원하는 전화번호였다. 사람의 몸속 세포들을 전부 바꾸는데 8년이란 세월이 걸린다는데 나는 그 동안 삶에 녹이 쓴 낡은 관계들을 며칠 만에 전부 교체하고 삶의 부품들을 하나씩 바꿔나가려고 하니 상처받고 아프고 힘들었던 거였다.
대자연이 품고 있는 산과 바다도 여러 가지 모양과 여러 가지 모습을 담고 살아가는데 하필이면 나처럼 자그마한 인간이라고 어찌 아무 상처와 상심 없이 살아가겠는가! 자연에 사는 조그마한 개미들도 자신보다 50배나 되는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 알차게 살아간다고 하는데 하필이면 개미들보다 몸집이 훨씬 큰 인간인 내가 그깟 하나 삶의 짐을 견뎌내지 못하고 아파하고 괴로워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괜찮다. 오늘만은 괜찮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새들에겐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고, 맹수에겐 날카로운 발톱이 있고, 거북에겐 딱딱한 등껍질이 있고, 초식동물에겐 빨리 달릴 수 있는 발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인간에겐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까 나약해져도 괜찮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 슬프면 울어도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다. 우리에겐 또 다른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마음과 생각에 달린 지혜라는 날개다. 실컷 울고 툭툭 털고 일어나 삶속에 희망의 날개를 다시 달아주면 된다. 처음부터.
인생의 패턴이 바뀌면 운명이 변한다고 하였다. 내가 지금 그 패턴을 다시 만들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오늘만이라도 가볍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