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7. 친구 4 2

by 조수란

그러니까 그로부터 약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생활을 하게 되었을 터였다.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던 나는 누구나 상관없이 되도록 친하게 지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무엇 하나 보잘 것 없는 부족함 들이 나를 자꾸만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오늘은 등록금을 내는 날이다. 엄마가 건네주신 현금을 가방 속 깊숙이 잘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선생님에게 바치려고 했다. (금액이 크면 보통 부모님들이 학교에 직접 계좌이체를 하지만 우리 때는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직접 바쳤다. 그땐 그랬다.)


의심이 많은 나는 다시 한 번 손을 깊숙이 가방 안에 넣고는 단단한 돈뭉치가 만져지는 느낌을 받고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돈은 살림이 가난했던 우리 집의 전 재산이었고 1년 농사비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학생으로서, 자식으로서 그렇게 큰돈을 처음 만져보기도 할 터였고 잊어먹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서 부담이 점점 더 커가고 있을 터였다. 이렇게 많은 돈을 내면서 학교에 보내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오랜만에 가족으로서의 따뜻한 사랑이 마음속 깊이 전해지면서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이때 저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오는 흐느낌소리가 창문을 넘어 바람을 타고 내 귀에까지 흘러 들어왔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마음 한구석을 파고드는 탓에 살며시 문을 열고 복도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것 같았다. 반쯤 열려져 있는 문을 향해 안을 기웃거리며 똑똑똑 두드려보았다. 나랑 같은 반에 다니는 친구였다. 높다란 키에 체구는 나보다 크지만 마음은 여린 아이인 것 같다. 웃는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은 슬픔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침실에 다른 아이들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삐죽이 들이밀면서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되냐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에 경계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들어오라고 손짓하였다. 나는 그 친구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자신의 침대에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었다. 이름은 연화이고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위에는 오빠가 있는데 아버지는 남매 둘을 키우시느라 건강이 안 좋다고 했다. 이번 달 안으로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나도 내 이름은 수진이며 어쩌다 실수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사는 게 내 맘대로 되지 않았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빗자루라고 했다. 나는 제법 진지하게 말하는데 연화는 울던 아이 같지 않게 깔깔깔 웃어댔다. 그 모습에 나도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등록금을 낼 시간이 다가오자 학생들은 전부 교실에 모였다. 담임선생님이 순번으로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은 자기차례를 기다렸다가 교탁을 향해 등록금을 내밀었다. 다음으로 내 차례였다. 나는 망설이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선생님은 다시 한 번 내 이름과 번호를 번갈아 부르셨다. 나는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일어섰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집에 사정이 있어서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출석부에 미납이라고 체크하시면서 한 달 안에 꼭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가방 깊숙한 곳에 손을 넣어 돈 뭉치를 꺼냈다. 노란 손수건으로 돌돌 말아 잘 묶은 돈 뭉치를 헤쳐 옆에 앉은 연화한테 건넸다. 순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그 아이의 얼굴은 멍하니 나와 돈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 그 연화의 표정을 빨리 가라앉혀야만 했다.


어쩌면 내 선택이 후회로 돌아오는 순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 보는 아이한테 내가 무슨 짓인가? 미친 짓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쓸모없는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싶을 정도로, 그 많은 금액의 돈을 건넸다. 내가. 아주 친절하고 쿨 하게.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걸 받아서 너의 등록금을 먼저 내고 있어. 나중에 무슨 방법이라도 생길거야.”


친구를 안심시키려고 비록 말은 이렇게 할지라도 혹시나 어머니, 아버지가 아시게 되면 나는 진작 뼈가 부러져 저 세상에서 헤매 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힘들어하는 친구를 도와준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잘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한테서 맞는 빗자루가 항상 눈앞에서 얼른거렸지만 이번에도 눈 한번 딱 감고 호되게 맞고 버티면 되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부터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되었고 연화는 그런 나를 항상 잘해주면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연화네 집에 놀러가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았다. 가는 길에 혹시나 학교 근처에서 불량소년들이 멀리서부터 휘파람을 불면서 길 건너와 내 연락처와 이름이라도 물으면 나보다 덩치가 큰 연화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얘는 내 동생이고 아직은 학생이라서 신분을 함부로 알려줄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머쓱해진 남자애는 다음날을 기대해보지만 연화는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쫓아내고 경고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친구를 만났다. 연화는 처음으로 나와 한편이 되어주는 단짝 친구였고, 처음으로 내 존재를 인식해주고 존중해주는 친구였으며, 처음으로 속심을 털어놓고 말하고 공감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따뜻한 감정들이 솟아오르면서 나에게 유일하고 소중한 존재였다.


어느 덧,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학교에서는 미납상태로 확인 된 등록금 독촉장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토끼처럼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고 교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혼자 계시는 선생님 옆에 다가가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우니 조금만 더 미루어 달라고 연신 부탁을 드렸다. 담임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학교 측에 사정을 잘 얘기해 놓을 테니 다음 달 안으로 못 가지고 오면 부모님과 면담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인생은 문제해결의 연속인 것 같다. 조그마한 일들을 해결하다보면 또 다시 큰 문제가 나타나 고민을 안겨준다. 오늘 주어진 문제들이 내가 자초해서 만든 일이지만 말이다.

머릿속에 고민거리를 가득 담고 운동장 한구석에 몸을 맡겼다. 이 사실을 엄마한테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순간 눈앞에 엄마의 분노와 함께 큰 빗자루가 쏜살같이 날아와 번뜩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영혼마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안 돼, 사실대로 말하면 절대 안 돼! 아님 그 돈을 잃어버렸다고 할까? 그 동안 무서워서 말 못한 거라고 애원하면서 용서를 빌어볼까? 찌들 린 가난 속에서 발버둥질 치며 겨우 모아온 돈인데 무슨 변명을 한단 말인가?’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갈등 속에서 몸부림치며 힘들어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위에 팔을 얹어놓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연화였다.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그 동안 고마웠어. 잊지 않을게.”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늘여놓았다.


“무슨 말이야, 무섭게 왜 그래?”


“아.. 아니야, 네가 항상 고마워서. 이번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와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응, 오케이.”


고민은 어느새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우리는 손뼉을 마주쳤다.

주말이 되자 같은 반에 다니는 란이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우리는 예쁘게 꾸미고 한껏 멋을 부렸다. 연화의 오빠와 아버지는 서로 친한 사이가 된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저녁 늦게까지 기숙사에 들어가기 싫었던 우리는 큰길 옆으로 나란히 걸었다. 고요한 거리를 숲속의 벌레들도 방해하지 않았다. 희미하게 비추는 가로등의 불빛도 고요함을 침범하지 않고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란이가 놀이를 제안했다.


“우리 가위, 바위, 보해서 이긴 사람 붙잡는 놀이 안할래? 붙잡힌 사람이 다음에 맛있는 거 사주기. 어때?”


나와 연화는 이구동성으로 “오케이.”라고 찬성했다.


“가위, 바위, 보. ㅋㅋ 내가 이겼네.”


운이 좋다고 생각한 나는 큰 길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남은 두 사람은 다시 가위, 바위, 보로 승부를 가리고 있었다. 앞으로 곧게 달리던 나는 다음으로 누가 이겼을까? 궁금하기도 하여 달리면서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이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함께 연화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밤의 온기를 깨트려버렸다.


“수진아, 멈춰!!!”라는 비명소리와 함께 앞으로 달리던 내가 자동으로 멈추는 순간 이 세상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운은 내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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