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 삶이라는 무덤

by 조수란

이듬해 아홉 살이 되던 때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웠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멍한 상태일 때가 많았고 기억력이 뒤떨어진 나는 구구단을 아무리 외우려고 노력해도, 최선을 다해도 도저히 외워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나에게 서슴없이 날아드는 건 빗자루라는 무기였고 거침없는 폭력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아무것도 모르는지, 아무것도 못하는지, 어째서 매일 맞기만 하는 건지, 이웃집 할머니의 말씀처럼 모든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잘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무엇 때문에 부족하기만 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머리가 나쁜 건지, 억울하고 분했다.


나는 그런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 몸을 세게 꼬집고 이발 자국이 깊게 날 정도로 팔 다리를 물어뜯기도 하고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아프게 쥐어뜯었고 마구 헝클어놓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손에 잡히는 돌멩이를 지나가는 닭들에게 힘껏 던졌고 발로 땅을 동동 구르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겁에 질린 닭들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저 멀리 줄달음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한편으로 자신을 미워하는 어른을 원망하기도 하고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그렇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세월과 함께 했다. 언젠가부터 주말이 되면 밥도 짓고 바구니를 들고 채소밭에 나가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따오기도 하고 방학이 되면 어른들을 도와 농사일도 조금씩 거들었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동네 아이들과 맘껏 숨바꼭질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고 싶었지만 이제 자유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장사가 하루에 두 번 마을을 방문한다.


“아이스크림 사세요.”를 높이 외칠 때마다 그 소리는 온 마을의 더위를 시원하게 쫓아냈고 동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호주머니에서 허름한 돈이나 동전을 꺼내 얼음과자를 하나씩 받아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 장면을 부러운 눈길로 한참이나 바라보고는 집에 돌아와서 독에 매달려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서늘한 가을이 되면 설탕을 발라 먹음직스럽게 만든 꽈배기장사가 온 마을을 돌아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쌀이나 옥수수를 저울에 달아 정해진 양으로 바꿔먹기도 하였다. 생각만 해도 군침을 흘리는 내가 처음에 엄마보고 사달라고 끈질기게 칭얼거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매번 아이스크림이나 빵에 더러운 콧물을 발라서 판다고 뻥쳤고 연속되는 거짓말에 익숙해진데다가 이제는 자신이 전처럼 철이 들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면서 속아 넘어가는 척을 하기로 하였다. 이다음 커서 어른이 되면 스스로 돈을 벌어 아이스크림을 엄청 많이 사먹겠노라고 속으로 굳게 다짐하고 맹세하였으리라.

입안의 침을 뱉으면 바로 얼음이 되어버릴 정도로 혹독하게 추운 겨울방학 때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충격적이면서도 놀라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에게 친언니가 있는데 예전부터 집이 가난한데다가 사정이 어려워 어릴 때부터 멀리 떨어진 외가에 보내졌다고 한다. 그곳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닌 언니는 나와 5살 차이가 난다고 하였다.


저 산 너머 추운 겨울 시장에 볼일이 없는데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시내를 자주 다녔던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 아이, 아니 언니에 대해 궁금해졌고 혼자가 아닌 형제가 있음으로 하여 다시는 외롭지 않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결 좋았다. 더군다나 이번방학에 우리 집으로 놀러온다니, 아니 자신의 집에 돌아온다니 꿈만 같았으며 하루빨리 눈앞에 나타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이 천사처럼 하얀 소녀가 나타났다. 추위가 그녀를 보호하듯이 높은 하늘에서 겨울 태양이 따뜻하게 내리 쬐었고 땅에서 먹이를 쪼아 먹던 닭들도 눈부신 그녀를 보기위해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동네에서 사온 강아지들도 그녀 앞에서 온순해졌다. 소녀의 커다란 두 눈이 미소를 지을 때마다 새하얀 치아도 그대로 살며시 드러났다.


핑크빛으로 반짝이는 알록달록한 머리핀은 그녀의 긴 생머리와 고운 얼굴에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야말로 선녀가 따로 없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가 흰 눈으로 덮여진 초가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언니는 거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언니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했고 모든 것에 익숙한 듯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그녀의 도도함이 멋있어 보였고 그녀의 아름다움이 부러웠으며 그녀의 자상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는 언니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신기했다.

동네사람들은 아빠의 얼굴을 쏙 빼닮은 언니를 보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초라하고 작아 보이는 나는 몸을 한쪽구석으로 기웃거리며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랜만에 귀한 손님이라도 찾아온 듯 부엌에서 분주하게 보내며 무척 신경을 썼다. 언니가 추워 할 가봐 무릎위에 따뜻한 담요를 얹어주는가 하면 달콤한 꿀물을 타주기까지 하였다. 그녀는 공부도 잘하고 예쁘기까지 하여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시선을 한 몸에 독차지 하였다.


나는 질투인지 부러움인지가 헷갈리는 갈등 속에서 고민을 하였다. 매번 어머니의 빗자루가 나를 향해 날아와 폭력을 휘두르면 언니가 용기 있게 나서서 어머니의 팔을 가로 막아 나섰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폭력을 멈추고 나한테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그야말로 미운 새끼오리가 된 것 같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이 모든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동안 언니에게 매 한번 날린 적 없고 화를 한번 낸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고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도 나중에 언니만큼 자라면 매를 맞지 않을까? 그때 되면 언니처럼 예쁘고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언니는 그림도 아주 잘 그렸다.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과 모습들을 눈과 마음에 깊이 담고 그것을 그대로 종이위에 쏟아내고 옮겨서 그려냈다. 언니는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지혜를 터득하여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쑥쑥 잘 자라났다.


깊은 밤이 되어 아름다운 달님이 대지를 환하게 비춘다. 달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둥글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둥글어질 것이다. 물기를 머금은 별들은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오늘밤에도 나는 이웃집할머니의 말씀을 되새겨보았다.


마음 밭에 어떤 씨앗을 뿌릴 것인가? 그 씨앗을 잘 관리하고 잘 가꾸어나가기 위해 오늘도 감사하고 착한 사람이 되었는지 스스로를 되 뇌이었다. 나에겐 삶이 그다지 행복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이곳을 이 동네를 이 세계를 탈출 하는 때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보이는 세계에서 내 삶을 최선으로 사는 것이 나에겐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나는 어느덧,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총명하지 못한 머리를 가진데다가 덜 떠름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나에게서 친구들이 한명 두 명 멀어져갔다. 어쩌다가 같은 또래 친구가 아이한테 놀러오면 어머니는 욕설을 퍼부으며 나와 친구를 함께 내쫓기까지 하였다. 추운 한겨울 나는 할 수 없이 친구랑 밖에서 놀았고 동네아이가 집에 돌아가고 나서야 새파래진 얼굴로 몸을 덜덜 떨면서 두 손 모아 입김을 불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부터 또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더욱더 외로웠고 이젠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오늘, 학교 청소당번인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쓰레기를 깨끗이 버리고 구석구석을 꼼꼼히 쓸었다. 바닥에 떨어진 마지막 종이까지 주어내고는 흐뭇한 마음으로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뒤늦게 깨달은 사실 하나가 있는데 다른 아이들은 벌써 집에 가고 없었다. 그 중에서 하필이면 학교로부터 집이 제일 멀리 떨어져있는 내가 맨 마지막까지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추운 겨울이었고 낮이 짧은 계절이라 바깥에는 어느덧 어둠이 짙어가고 있었다. 나는 교실 문을 잠그고 열쇠를 항상 올려놓는 창턱에 숨겨놓고는 가방을 메고 재빨리 학교를 빠져나왔다.


조금이라도 걸음을 재촉하면서 들판을 가로질러 산길에 들어섰다. 집까지 1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혼자서 걸어가자니 앞길이 막막하였고 두려움이 앞을 가로막아 나섰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하늘에 환하게 걸려있는 달과 초롱초롱 박혀있는 보석과 같이 반짝이며 빛나는 별들은 흰 눈에 쌓인 대지를 골고루 비추어주었다. 하얀 눈을 포근하게 덮은 산들도 어둠 속에서 흰색으로 사방을 환하게 포장해주었다. 사람의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는 이곳에 스산한 겨울바람이 추위와 함께 뼈 속까지 스며들어와 내 존재를 인식시켜주었다.


저 멀리 숲속에서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검은 유령들이 나타나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의 무서움과 배고픔과 괴로움들이 숨 막힐 정도로 영혼을 더욱 조여 온다.


그렇게 나는 이름 모를 무덤 몇 개, 몇 고개의 산을 지나고 나서야 두 손을 움켜쥐고 무서움과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용기를 내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만 빨리 걸으면 집에 곧 도착할거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걷고 또 걸었다.


앞으로 걸어갈수록 길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어둠은 점점 더 짙어져 갔고 마음은 매서운 바람에 찢겨져 나갔다. 이따금씩 스산한 바람이 저 멀리로부터 나뭇가지를 쓰다듬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긴 하였지만 그 역시 공허한 소리여서 나에게 어떠한 위로나 두려움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옮기며 한참을 걸으니 저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새여 나오는 마을의 불빛이 가물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내가 어둠 속에서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보고 싶었던 희망의 빛이었고 아름다운 불빛이었다.


숨 막히는 시간을 마주하면서 나는 그제야 공포심에 얼어붙었던 정신을 조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얼마 못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시커먼 동굴이 사악한 입을 쩌~억~ 벌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집에 가려면 반드시 그 길을 지나야만 한다. 꿈과 같은 현실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차라리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로부터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오래전부터 이곳에 알 수 없는 살인 사건과 성폭행으로 온 마을이 떠들썩 해왔던 곳이다. 더욱 무섭고 불안한 건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흉악범을 잡지 못했으며 성폭행과 살인사건은 몇 년을 사이 두고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동안 내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연속 들이닥치는 시련에 이젠 운명 따윈 믿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동네 아이가 가르쳐준 신도 믿지 않기로 하였으며 이제는 신마저도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동네 아이는 신에게 기도하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며 이루고 싶은 것을 뭐든지 전부 들어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자신의 소원을 간절히 빌어봤자 언제나 먼저 날아오는 건 엄마의 빗자루뿐이었다.


뼈 속까지 무섭고 차가운 동굴 입구를 지나는 동안 으스스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귀밑머리를 스르륵 스쳐 지나갔다. 그 소리는 지상을 떠나지 못한 억울한 영혼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증오와 원망으로 가득 찬 억울함을 담아 이승에서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고 떠나려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그 공포가 뼛속까지 깊게 스며들어와 견디기 어려운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어지러움이 나를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 썼지만 발을 헛디뎌 자꾸만 옆으로 휘청거렸다.


나는 차갑고 스산한 바람을 통해 영혼들의 흐느낌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의 가파른 숨소리에 가슴이 조여 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고 두 손 모아 귀를 막았다. 당장이라도 등 뒤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이름 모를 형체가 으스스 나타나 내 뒤를 쫓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귀를 막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눈을 가려 앞을 보지 않으려 하였다.


그리고 오래 전 해연이네 할머니가 들려준 소중한 한마디가 떠올랐다. 두려움은 누구의 탓도 아니며 두려움을 두려워할수록 그것이 소리 없이 전염되고 구덩이처럼 파면 팔수록 더욱 커진다고 하였다. 두려움을 두렵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이 순간이 더는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노력하였다.


그리고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곁에서 지켜주시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지금부터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 쉬면서 되도록 섬뜩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기로 하고 죽은 사람의 혼령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기로 하였다. 나는 어릴 때 엄마가 불러준 자장가를 흥얼거렸고 엄마가 안아주던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힘든 삶의 고통을 견뎌내면서 소름 돋는 이 순간을 조금씩 견뎌냈고 차츰차츰 무서움 속에서 빠져나왔다. 얼마나 끔찍하고 정신이 아찔했던 순간이었던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온 몸이 식은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꽉 움켜 쥔 두 주먹은 놀란 상황에 웅크리고 자신을 보호하듯이 온 힘을 한 곳에 모으려는 듯 잘 펴지지 않았다. 식은땀에 냉기가 돌자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행여나 하는 마음에 어둠 속으로부터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저녁 늦게까지 기다려도 학교에 갔던 자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걱정부터 앞서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을까 하여서였다. 하지만 여러 집들의 창문으로 비추는 불빛을 가로질러 작은 골목을 빠져나와 집 문 앞에 이르기까지 아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집문 앞에 도착한 나는 비닐을 씌워 문 풍 질한 창문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며 마음이 저려왔다. 안도의 한숨보다 먼저 목이 메여왔다. 그 순간만큼은 기쁨과 슬픔, 서러움과 괴로움이 서로 교차되면서 뒤엉키는 감정들이 마음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 집안에는 무슨 일이 있었으며 오늘 겪은 이 끔찍하고 소름 돋은 상황을 어떻게 토해내야 속이 후련해질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집안을 들어갔다. 나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믿기지 않는 장면에 믿을 수가 없어 나는 볼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까 오면서 등골이 오싹해진 무덤에 혹시라도 내 영혼을 빼앗겼는지 떠올리고 의심하면서 다시 한 번 세게 꼬집어보았다. 왜냐하면 중년의 남자와 여자는 나에게 눈길 한번을 주지 않은 채, 아무런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서로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면서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이 된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견딜 수가, 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나는 아~~아~~악~~~ 집이 무너질 듯, 땅이 금이 갈듯, 온 세상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 모든 것을 부셔버릴 듯 온 힘을 다해 몸속의 세포들을 총동원해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갑자기 남자의 커다란 손이 잽싸게 날아와 벌겋게 얼어버린 내 뺨을 힘껏 후려갈겼다. 그리고는 참아왔던 모든 분노와 세상에 대한 원망을 한꺼번에 쏟아내듯이 내 배를 발로 걷어차고 비참하게 짓밟아 놓았다.


순간 자동으로 웅크린 내 몸과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두 팔을 막은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눈앞의 악마의 얼굴에서 소름 돋는 분노의 빛이 내 자신을 향해 발사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여자가 달려와서 말려보지만 악마의 눈에는 이미 파란불이 켜져 있었다. 멈출 수 없는, 멈추면 안 되는, 생각의 브레이크가 달려있지 않았다. 나는 죽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 성격은 괴팍해져갔고 모든 판단이 흐려져만 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설) 5. 인생의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