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 인생의 숙제

by 조수란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어날 무렵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면서 온 몸이 고통스러웠다. 찢겨진 살갗에 옷들이 스칠 적마다 몸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긁어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넓고 커다란 손이 이마위에 얹어놓더니 아직도 열이 펄펄 끓는다고 말했다. 그것은 분명 아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언제 돌아왔는지를 모르는 엄마 아빠를 뒤로하고 나는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어머니는 수건을 온화한 물에 적셔 온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나에게 진통제를 먹이기 위해 알약을 쪼개서 물을 준비하고는 한손으로 약을 들고 한손으로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간신히 눈을 뜬 후 바닥에 놓여 진 알약을 보자마자, 겁부터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채, 쉰 목소리마저 공기 속에 갈라지면서 끊겨지는 울음소리에 몹시 괴로웠다. 어머니는 처음에 잘 달래서 약을 입안에 넣어주고 물을 먹였다. 하지만 쓰디쓴 어른 약이 목구멍에 들어가기도 전에 자동으로 반사되어 튕겨 나왔다. 엄마는 할 수없이 약을 숟가락에 으깨어 가루를 내어 먹여보지만 몇 번이고 토해냈다.



그렇게 악몽 같은 하루가 조금씩 지나가고 늦은 밤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그제야 목구멍에서 훌쩍이는 흐느낌 소리도 조금씩 가라앉았고 눈은 퉁퉁 부어올라와 있었다. 창문너머 저 멀리 풀숲에서 반딧불이 반짝이며 마음을 어루만져주었고 하늘에 걸려있는 반달과 물기에 젖어 있는 것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창문으로 살며시 들어와 나를 비추어주고 보듬어 주면서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사계절이 지나가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 세자를 쓸 줄 모르는 나는 당연히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라는 게 뭔지도 모른 채 꼬마 1학년 학생이 되었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학교까지 몇 고개의 산을 넘어 1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학교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고 피곤했지만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다녀서 외롭지 않았고 친구들과 함께 신나는 놀이를 재밌게 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였다.


점심이면 교실안의 난로 불 위에 너도나도 얹어놓은 따뜻한 도시락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어서 행복했고 선생님에게서 받는 따뜻한 관심과 기분 좋은 칭찬이 날듯이 기쁘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매일 학교를 간다는 생각에 항상 들떠있었다. 학교라는 곳이 어쩌면 그 동안 갇혀있던 집이라는 슬픈 공간을 떠나 자유와 희망이 가득 찬 또 다른 세계를 탐험하고 경험하는 신나는 여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조용한 날, 이 세상 모든 소리들이 차단된 것처럼 주위가 고요한 주말오후였다. 나는 깊은 잠속에 빨려 들어갔던 블랙홀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현실에 돌아와 있음을 느꼈다. 창문을 뚫고 들어와 바닥을 내리비추던 햇빛이 벽을 타 올라가려고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른들은 오늘도 나를 집에 혼자 두고 밭에 일하러 간 모양이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라서였는지 급급히 세수하고 가방을 메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집 마당에 내리쬐는 태양에 굴복하듯이 하얀 눈들이 여기저기 녹기 시작하여 땅을 질벅하게 만들었다.


스산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 어디론가 날아가기 위해 급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흙탕을 피해 눈 위를 조심조심 밟아가며 골목 하나를 건너 이웃집에 간신히 도착했다. 내가 사는 초가집과는 달리 번듯한 벽돌집으로 앞마당이 잘 꾸며져 있는 해연이네 집은 동네에서 가장 멋있고 잘 지은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낡은 방앗간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오래전 치매가 걸린 해연이의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며느리인 해연이의 엄마는 밥을 주는 시간외에는 하루 종일 문을 잠그어 놓고 있다. 할머니는 그 안에서 먹고 마시고 볼일을 보는 것 같았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갈 때 혹시라도 그 근처에라도 지나치게 되면 숨쉬기조차 힘든, 지독한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욕심이 많고 심술이 궂은 부모와 달리 해연은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가 착한 아이였다. 혹시라도 그 아이의 엄마가 어디가고 없을 때면 해연은 엄마 몰래 창턱에 숨겨진 방앗간 열쇠를 가만히 훔치고 할머니에게 물과 간식을 갖다 드렸다. 문 앞에 도착하자 이웃집의 현관문을 똑똑 두드렸다.


“해연아, 학교 가자.”


나는 문을 살며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따뜻한 가마 목에 다리를 뻗고 휴식을 취하던 고양이가 “야옹!”하고 올려다보며 인사를 했다.


이때 침실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해연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나를 향해 신발 벗고 올라오라고 손짓하였다. 집안에는 미닫이문을 중심으로 방과 거실로 구분되어있었다. 식탁은 알록달록한 꽃무늬로 되어있었으며 그 옆에는 커다란 벽시계가 집을 환하게 장식해 주었다.


해연이가 있는 침실에는 현대식 책상과 의자가 보기 좋게 있었고 아름다운 핑크빛 커튼과 침대를 마주향해 걸려있는 화목한 가족사진이 침실을 아담하게 꾸며주었다. 책상위에 놓여있는 캐릭터그림으로 된 예쁜 필통과 귀여운 고무지우개가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국어교과서와 공책이 놓여있었다. 나는 친구의 모든 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면서 입을 열었다.


“해연아, 학교가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해연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선생님처럼 또박또박 천천히 말해주었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지금은 오후이며 해는 서산에서 뜨는 게 아니라 지금 서산으로 지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다 했냐고 물어보았다.


“숙제? 그게 뭔데?”


“숙제란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다시 공고히 복습하기 위하여 선생님이 방과 후에 학생들에게 내주는 과제 같은 거야. 그러면 숙제를 안내장 아니면 노트에 잘 적었다가 집에 돌아와서 하는 거야.”


해연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 듯 말 듯 웃음을 지어보이며 수줍게 머리를 긁적였다. 태어나서 숙제라는 게 뭔지를 오늘 처음 알았다고 해야 될 터였다. 속상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이때 책상위에 있는 시계가 알람을 통해 시간을 알려오자 해연은 익숙한 듯 빵과 물 한 컵을 쟁반에 담고는 나보고 할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방앗간을 향했다.


해연은 할머니에게 드릴 간식을 나에게 잠시 맡기고는 바깥쪽에 있는 창문 틈 사이에 팔을 길게 뻗어 자물쇠를 조심히 꺼냈다. 그리고는 방앗간의 문을 찰칵 열었다. 그 소리에 할머니는 주춤하시더니 한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문을 여는 순간 고약한 냄새가 공기와 함께 뿜어져 나와 코를 찔렀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냄새는 문 앞의 공기마저 침범했다. 흰머리가 백발이 된 할머니는 올해 90세 정도였다.

세월이 할머니의 검은 머리를 하얗게 물들여주었고 아름다운 삶과 기억을 빼앗아갔다. 할머니는 두툼한 솜옷을 입긴 하였지만 야위어진 얼굴과 그 위에 새겨진 쪼글쪼글한 주름이 지나간 시간과 고된 삶을 말해주었다.


텅 빈 집안에 베개와 이불이 널브러져 있었고 맨 구석엔 요강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치매가 왔다는 말과는 달리 할머니는 정신이 또렷했으며 우리를 보자 두껍고 거친 손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어서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손에 든 간식을 할머니 앞에 내려놓았다.


“고맙다. 얘야”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더니 목이 마른 듯 물을 몇 모금 마셨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인간 세상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봄에 밭을 갈고 그 위에 씨앗을 뿌려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그러면 새싹이 돋아나고 그 옆에 풀이 올라오면 호미로 김을 매고 열매가 달리면 벌레를 쫓아내려고 약을 뿌린단다. 그렇게 농사에 신경 쓰고 잘 관리하여 가을이 되면 풍성한 야채와 과일 등 식량을 뿌린 대로 마음껏 거둬들이지.”


할머니의 맞는 말씀에 우리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빵을 드시면서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바깥의 농사일에 정성을 기울이다보니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가꾸지 않는구나. 농사일은 자연의 흐름과 순환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때가 있으며 곡식들도 자연의 이치대로 잘 자라고 무르익는단다.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마음 밭을 가꾸지 않아 매일 매달 해마다 마음속의 잡초가 어느덧 무성하게 자라나도 그것을 제거하려하지 않는구나. 항상 다른 사람만 탓하고 세상을 한탄하면서 살아가지.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해가 나면 그늘을 찾으면 되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비가 오면 하늘을 탓하고 해가 나면 곡식이 말라간다고 투덜대기만 하지.

도시에 사는 아가씨들은 겨울에는 짧은 치마를 입고 여름에는 밤늦게까지 놀고 낮에 잠을 청한단다. 그리고는 늦잠을 잔 탓에 아침밥을 거르고 점심은 대충 먹고 저녁엔 맵고 짜고 인스턴트로 된 음식으로 미각을 혼란시키면서 폭식을 한단다. 이처럼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들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하고 바이오리듬을 거슬러 살고 있지.

그들은 식물과 달리 자신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때가 언제인지를 잘 모르고 기꺼이 수명만 단축하는 삶을 선택해 살고 있단다. 그렇게 짙은 삶을 반복하여 살다보면 불안과 욕심, 시기와 질투, 오만과 편견이 생기면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수록 이해가 안가고 알 수 없는 말들에 나는 용기를 내어 질문했다.


“할머니, 마음 밭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가꿔가나요?”


할머니는 빙그레 미소 지으시더니 그릇에 담긴 빵을 들어 한입 떼고는 주름으로 덥힌 입가를 닦으면서 천천히 말씀하셨다.


“음, 그건 말이지. 쉽게 말하자면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거야. 그리고 혹시라도 넘어지면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거야. 나한테 찾아오는 두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 그다음 꿈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강한 마음을 먹고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행동과 생각과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야.

음, 뭐랄까. 자기가 하고 싶은 길을 찾아나서는 것. 어른이 되어 꿈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좋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단다.

만약에 좋은 밭에 씨앗을 뿌리면 좋은 곡식이 자라고 가시덤불이나 돌멩이 밑에 씨앗을 뿌리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처럼 우리의 마음속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그 믿음이 우리마음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거란다. 항상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인간들은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욕심쟁이란다. 마음 밭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할 줄을 알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거란다.”


할머니의 말씀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마음 밭에 꿈의 씨앗을 뿌리는 거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고 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동네 사람들은 해연이 할머니를 보고 정신이 나간 노망난 할망구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신성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빠져 들어가는 신비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아까 할머니 옆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갑자기 하늘에 수십 개의 달이 떠있다고 하셨다. 그 아름다운 장면을 놓치면 안 된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빨리 사진기를 내 놓으라고 화내셨다. 그러는 동안 밖에서부터 어른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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