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때, 얼마 못가 바로 앞에 허름한 나무지팡이를 쥔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나무에 기대여 축 늘어져있었다. 그의 머리는 폭탄에 맞아 피어오른 검은 멍게구름 같았고 너덜너덜해진 옷은 여러 겹으로 깁고 기운 탓에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더 이상 옷 모양이 나지 않았다. 석탄먼지가 얼룩으로 그을린 그의 얼굴은, 생긴 모습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굶주림에 허덕이는 좀비를 연상케 했다.
마음속으로,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왔다는 무서운 생각에 내 자신을 가련하게 생각하면서 ‘이젠 끝이다.’하고 절망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한참을 지나도 그 괴상한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고 이 모든 것이 귀찮게만 느껴지고 이 상황에 무관심해 보이는 눈치였다. 그는 그저 내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 커다란 귀를 조금씩 움직일 뿐 다른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나는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역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조금씩 뒤로 물러갔다. 그러고는 그렇게 또 다시 숲속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왜냐하면 언제나 대자연의 품이 나를 항상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풀숲의 가장자리에 앉아 저기 저 높다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걸려있는 하얀 구름은 포근한 이부자리를 연상케 했다.
어디선가 살랑대며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수많은 의문과 질문들이 조그마한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까 처음 봤던 사람은 무엇 때문에 비닐로 자신을 꽁꽁 감쌌으며 금방 보았던 거지처럼 생긴 남자는 언제부터 저렇게 있었으며 무엇 때문에 아주 가까이에 있었던 나를 보고도 못 본 척을 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아까 소름끼치는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섬뜩한 생각이 들자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그리고는 긁힌 상처자국으로 난 손등을 여기저기 살피면서 손목으로 길게 뻗은 파란색 핏줄이 줄기처럼 뻗어 온몸으로 이어지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공포와 무서움에 심장이 쿵쾅거리며 세차게 뛰면서 내 자신에게 두려움의 신호를 보내는 것도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빨리 뛰는 심장에게 ‘괜찮아.’ 라고 말을 걸면 놀란 가슴은 더욱 빨리 뛰었고 지금은 ‘심장아, 빨리 뛰어!’ 라고 말해 보지만 안정된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심장이 뛰는 속도는 평일과 다름없었다.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 상황이 참 웃기고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며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자 한편으로는 몹시 실망스러웠고 괴로웠으며 너무나 슬펐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는데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아까보다 조금 더 세게 불어와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나는 그런 바람의 존재를 느끼면서 고맙고 감사한 순간을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바람아, 너는 비록 실체가 없어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단다. 너는 가끔 우리 집에 들러서 젖어있는 빨래도 마르게 해주고 집안 곳곳에 축축한 것을 부드럽게 닦아주기도 해주지. 몸에 난 상처도 호호 불어 아물게 해주고 눈가가 촉촉한 내 눈물도 닦아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단다.
네가 필요로 한 이 세상이 너를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기도 하지. 그리고 네가 바퀴에 들어가면 땅위에 굴러가는 모든 것들이 잘 달릴 수 있고 네가 산으로 날아가면 모든 식물들이 춤을 추면서 반겨주기도 하지. 네가 바닷가로 가면 파도가 출렁이면서 넘실넘실 춤을 추기도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네가 한번 화를 내면 태풍이 휘몰아치고 힘이 닿는 것을 무너뜨리기도 하지.
너는 때론 찬바람으로 매섭게 휘몰아쳐 사람들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한번 분노를 일으키면 바다와 휩쓸려 홍수를 일으키고 모든 것을 잠겨버리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너는 우리에게 가만히 알려주지.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상황을 잘 견뎌내고 조절하는 힘은 결국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떤 상처는 시간이 필요하고 세월이 치료해준다는 것을. 어쨌든. 고마워. ‘바람’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몰이꾼 소리가 났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온 몸의 세포들을 총 동원해 몸을 앞으로 바싹 당기면서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순간을 놓칠세라 재빨리 풀숲을 헤치고 나왔다. 때마침 길을 지나가던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사는 또래 친구인 연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수레에 나무를 가득 싣고 집을 향해 가는 길이였다. 나는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고 꿈만 같아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어쩔 바를 몰라 하며 폴짝폴짝 뛰어갔다.
갑자기 숲속어디선가에서 반가운 얼굴을 하고 튀어나온 나를 본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시더니 어떻게 이곳에 혼자 있게 되었는지부터 물어보셨다. 내가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할아버지는 나를 번뜩 안아서 수레에 앉혔다. 짐을 가득 실은 황소는 수레위에 한사람을 더 앉히자 커다랗고 둥근 눈을 부릅뜨고 수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이제야 완전히 살 것 같은 기분을 되찾은 나는 아침에 비닐에 몸을 꽁꽁 감싼 남자와 아까 전에 보았던 이상한 사람을 만난 기억을 되새기며 할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 할아버지는 생각에 잠기시더니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깊은 산속에서 소를 방목하려면 해가 중천에 떴다 해도 깊은 산속의 풀잎에는 여전히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단다. 소들에게 매일 좋고 신선한 풀을 먹이려면 여기서는 비닐 옷을 입고 장화를 신어야만 한단다.”
그러고 보니 아까 비닐을 씌운 남자는 장화를 신은 것 같기도 하였다. 나는 그제야 내 자신의 옷에도 이슬에 스쳐 지나 옷이 조금 축축해졌다는 것이 떠올랐고 그 당시만 해도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 그 모든 상황을 잊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리가 있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그러면 아까 길옆에 앉아있는 그 이상한 사람은 누구죠?”
할아버지는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 입술에 고정시키고는 두 손 모아 조심스럽게 불을 붙이면서 한 모금 들이마시더니 연기를 허공에 내 뿜으면서 말했다.
“얘야,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다. 태어나서부터 앞을 못 보는 눈 먼 장애인이란다. 그 애가 어릴 때 병으로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자 혼자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하는 참 불쌍한 놈이지. 마을 사람들이 가끔씩 그에게 밥도 주고 때때로 보살펴 주기도 한단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동안 공포와 두려움이 어느새 할아버지가 피우는 담배연기와 함께 깨끗이 사라졌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이 세상에 부모가 없는 사람이 있었고 앞을 보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까 그 남자를 다시 떠올리자 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불행했지만 불행하지 않은, 행복하지 않지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고생을 하면서도 사실은 어떤 것이 고생인 줄 잘 몰랐다. 그저 내 자신을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조금 다르게 생각하였고 그 아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그럴 땐 빨리 커서 어른이 되어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까지 하였다.
오늘 겪었던 일도 어쩌면 그 동안 쌓아왔던 많은 두려움과 공포, 고독과 외로움의 집합체가 나를 무섭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이 무서운 사람인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내 마음속에서부터 두려움이라는 작은 불꽃이 싹틔우며 자라나 불안과 불행, 두려움과 무서운 생각들이 모여서 울타리가 만들어졌고 나를 슬프고 괴롭고 힘들게 만들어 그 속에 몰아넣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비록 시내에 가보지 못했지만 다행히 할아버지의 구원의 손길에 두 손 모아 깊이 감사드렸다.
집에 돌아온 나는 피곤함에 지쳐있었다. 갑자기 배안에서 으르렁거리며 굶주린 괴물들이 위를 마구 긁어댔고 갈증에 목이 말라 몸부림 칠 지경이었다. 부랴부랴 신발을 벗어던지고 주방을 향해 놓여있는 물통에 매달려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꿀꺽꿀꺽 들이켰다. 이날 처음으로 물의 달콤한 맛을 온 몸으로 느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식탁에 마주앉아 아침에 어머니가 밥상위에 차려놓은 음식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였다.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그 위에 김치를 얹어놓고 한입에 쏙 밀어 넣었다. 이처럼 꿀맛이면서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을 먹으면서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졌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먹고 난 뒤 나는 두 팔을 머리 밑에 받치고 천정을 향해 누웠다. 그리고 네모 칸 안에 예쁜 꽃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로 도배한 천정을 바라보면서 어느새 낮잠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잠이 와서 눈을 살며시 감겨주었고 코에 들어와 쌔근거리게 하였으며 입을 쓰다듬어주더니 힘이 풀리게 만들었다. 잠이 귀에 들어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차단해주었고 뇌를 통과해 악몽을 꾸지 않고 편안하게 재워주었다. 그 순간만큼만은 신이 존재한다면 잠으로 나의 피곤을 쓰다듬어 주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