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죽을 수 없어. 다 잘 될 거야.’ 이 꿈같은 현실을 빨리 벗어나야 했다. 나는 어느 동화책에서 나오는 위기의 순간들을 지혜롭게 잘 넘기고 극복하는 장면들을 하나 둘씩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무슨 방법이 꼭 있을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앞을 가리며 눈에 고인 눈물을 훔치고 정신을 차리고는 속으로 애처롭게 엄마를 부르며 벗어날 방법을 궁리했다.
그런데 이때 바로 앞에 키가 훨씬 크고 무성한 숲과 나무들이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마치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서워하지 말고 어서 빨리 오라고 말이다. 옳지!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풀숲을 향해 정신없이 뛰어 들어갔다. 나는 달린다. 더 빨리 달린다. 그리고 정신없이 달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린다.
정말이지. 이 날의 기억은 오늘도 잊혀 지지 않는 소름 돋는 순간으로 남아있을 터였다. 너무나 선명했던, 두려웠던, 공포가 엄습했던 추억이었을 게다. 산속의 무성하고 빼곡하게 자라난 풀과 나뭇잎들이 나의 조그마한 체구를 푸른색 치마폭 밑에 꽁꽁 숨겨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숲이 울창한 산속에서 자그마한 몸집을 찾기란 어쩌면 바다 속 보물찾기와 같은 것 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깊은 산속에 비집고 들어가 한참을 꽁꽁 숨어 그 속에 몸을 감추었다.
얼마나 있었을까? 깊은 산속에는 벌레들의 요란한 울음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릴 뿐 남자의 숲을 헤집는 소리나 발자국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까 너무 긴장한 탓에 손에 쥔 식은땀을 옷에 비벼댔다.
이제야 두려움이 조금 가라앉자 조금씩 긴장을 풀며 안도의 한 숨을 얕게 내 쉬었다. 무더운 날씨에 갈증도 나고 소변도 마려웠다고 몸이 마구 신호를 보냈다. 바지를 아래로 내리고 긴장으로 참아왔던 소변을 시원하게 쏟아냈다. 볼일을 다 본 다음 끽끽 거리며 바지를 올릴 때였다. 이름 모를 산 가시들이 바지에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다리를 쏙쏙 찔러놓았다. 뾰족한 일자로 된 가시와 고슴도치처럼 생긴 조그마한 가시가 온 몸에 빼곡히 들러붙어 사정없이 찔러댔다.
살갗을 스치는 쓰라린 아픔을 참아가며 가시를 떼어내기 위해 두 손이 바삐 움직였다. 이 상황이 어서 빨리 지나가길 바라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온 몸에 들러붙은 가시를 하나, 둘. 하나, 둘. 계속 떼어내기만 했다. 그렇게 울먹이면서 가시를 떼어내느라 한참을 고생하고는 풀숲을 살며시 헤쳐 나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까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나의 조그마한 마음속에 이름 모를 아픈 가시하나가 새로 생겨났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겉으로 보이는 가시는 떼어내면 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가 삶이라는 무덤에 독이라는 씨앗으로 품어졌을 터였다.
이제는 뒤로 돌아가면 안 된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시 조그마한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혹시라도 아까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면 꼼짝없이 붙잡힐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 무서운 남자 때문에 두려움이 온몸을 덮쳐왔고 한 순간이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하려고 서둘렀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뻗어있는 큰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에 띌 가봐 일부러 큰 길을 나가지 않았고 숲을 따라 천천히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오르막 숲을 헤치면서 달리고 큰 산을 넘어 또다시 내리막을 향해 달렸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이마를 타고 내려오고 온 몸에 다닥다닥 붙은 가시가 조그마한 고슴도치를 연상케 했다. 몸에 긁힌 상처자국이 여기저기에서 쓰라렸고 누군가가 쫓아올 것 같은 섬뜩한 바람이 온 몸을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풀숲에서 길을 잃고 헤맨 나는 몸이 아파왔고 힘들었으며 배가 고프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고 안전하고 포근한 집이 눈앞에 떠올랐다. 어제까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에게 무관심 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들을 한없이 원망하였다. 그리고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위기에 닥치고 두려움이 앞을 가리자 부모는 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으며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고 먹여주지 않았더라면 생존이 불가능했음에 대해 다시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 순간 가슴이 울컥하였고 어머니가 그리운 마음에 낮은 소리로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그 소리에 한낮 휴식을 취하던 고추잠자리가 머리위로 날아다녔고 먹이를 쪼아 먹던 참새가 푸드득거리며 나무위에 날아올랐다. 나비와 꿀벌은 꽃을 향해 너도나도 어딘가에 찾아 다녔고 개미들은 혹시나 내 발등에 부딪쳐 교통사고라도 날까 두려워 불안하게 움직이며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풀숲을 헤집고나왔다. 그제야 대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시원하게 한눈에 담을 수 있었고 파란 하늘에 걸린 새하얀 구름을 보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은 처음부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연은 그대로였고 대지는 평화로웠다. 뜨거운 태양은 어느새 하늘 중앙에 걸려있었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길을 다시 돌아가기엔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다시 되돌아가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현명하지 못한 방법일 터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자니 불투명한 앞길이 불안하였고 또 다른 위험에 부딪칠 가봐 마음을 움츠렸다. 할 수 없이 있는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보려고도 생각해보았다. 그곳은 안전지대와 마찬가지였고 커다란 나무 밑에 시원한 그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무턱대고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모험을 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였다. 움직이면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 나서고 생각을 변화시켜야 또 다른 방법이 생길 거라고 고집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용기를 내어 몇 발작을 앞으로 나아갔는데 얼마못가 바로 앞에 토색으로 된 알록달록한 무늬로 새겨진 예쁜 나무막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평일 때 시골아이들과 함께 나무막대기를 잘도 가지고 놀던 나는 이렇게 예쁜 막대기를 처음 보았다. 그것을 가지고 다음날 동네아이들에게 자랑을 하려고 생각하였다. 머릿속에 너무도 신난 생각을 굴리면서 나는 땅위에 있는 나무막대기를 손에 넣으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오싹함이 온 몸을 덮치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것은 예쁜 막대기가 아닌 독뱀이었다. 갑자기 지르는 비명소리에 꽃뱀도 기겁을 했는지 스르륵 하고 재빨리 움직이며 풀숲을 향해 도망을 갔다. 뼛속까지 섬뜩한 느낌을 받는 순간, 혹시나 뱀이 따라 올까 겁에 질려 정신없이 앞으로 뛰어갔다.
뒤를 돌아보면서 달리고 앞으로 또 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달리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달음박질을 한 양쪽 발끝에 강한 힘을 주면서 브레이크를 억세게 밟았다. 갑자기 멈춘 발밑에서 모래먼지가 뿌옇게 일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한꺼번에 겪는 일생의 공포와 두려움을 오늘 하루 만에 전부 다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름 돋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꼭 잡고 몸에 쌓인 긴장을 풀려고 긴 한 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이때, 얼마 못가 바로 앞에 허름한 나무지팡이를 쥔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나무에 기대여 축 늘어져있었다. 그의 머리는 폭탄에 맞아 피어오른 검은 멍게구름 같았고 너덜너덜해진 옷은 여러 겹으로 깁고 기운 탓에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더 이상 옷 모양이 나지 않았다. 석탄먼지가 얼룩으로 그을린 그의 얼굴은, 생긴 모습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굶주림에 허덕이는 좀비를 연상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