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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꽃보다 아이

by 조수란

어쩌다 하루 종일 원고만 쓰느라 피곤에 절어 있던 터라 작은 아이의 바람대로 시원한 저녁공기를 마시려고 집을 나설 터였다. 글을 마무리 짓다가 문뜩 올해가 무슨 해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요즘 따라 나를 잘 잃어버리곤 한다.


가끔은 낮에 잠깐 눈을 붙였다 깨어나는 사이에도 전생이나 몇 세기를 금방 건네 뛰어 온 사람처럼, 여기가 어디지? 일단 네모난 방인 건 알겠는데 밖으로 나가는 문이 어디에 있지? 라고 휘청거리며 화장실을 향하면서 스스로의 중얼거림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몸을 일으켜 집안을 둘러보면서 그제야 내 영혼이 다른 세계에 놀러갔다가 부랴부랴 이동을 해서 원래대로 돌아온 느낌이다.


독서할 때도 그렇다. 혹시라도 필이 꽂히는 책을 만났다 싶으면 그 순간만큼은 상상 속에서 책 속의 세계에 푹 빠지곤 한다. 그러다가 가끔 이 세상과 소통하는 문을 잃어버리곤 할 때가 있다. 혹시라도 휴대폰이 울리거나 아이들의 부름소리가 내 영혼을 간신히 흔들어 깨워서야 다시 두 아이의 엄마로 현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푹 빠질 때 나를 잃어버리거나 내 존재를 잊어버리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올해는 무슨 해지? 나는 방에서 아직도 인터넷에 빠져있는 큰아이보고 물어본다.


“혹시 올해 무슨 해인지 알고 있나?”


“항상 행복하소, 건강하소.”


큰아이의 대답에 그제야 집나갔던 기억이 다시 돌아온 듯, 올해가 ‘소’해인 게 금방 떠올랐다.


“ㅋㅋ 알소. 빨리 준비하소.”


이때 작은 딸이 갑자기 웃으면서 달려오더니 말했다.


“엄마, 내 양말이 없어졌소. 혹시 어디 있소. 빨리 찾소.”


이 말은 듣고 있던 나는 할 말을 잃었고 방에 있던 큰아이는 재밌어 죽겠다고 웃어댔다.

민망해진 둘째가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다시 얼버무리며 말했다.


“엄마, 미안해. 나는 그저 소해이니까. 뒤에 소를 붙였을 뿐인데. 금방 내가 한 말 취소할게. 그리고 내 양말 어디 있는지 정말 못 찾겠어.”


“아유~ 괜찮아. 엄마는 다윤이 덕분에 올해가 소해인 걸 확실히 알았지 뭐야. ㅎㅎ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네, 엄마.”


그렇게 작은 아이가 혹시, 말이나 상황에 걸려 넘어지려고 할 때, 나는 제꺽 부추기며 일으켜주면서 지팡이 역할을 한다.

내 아이지만 내 어릴 때와는 달리, 총명하고 영리한 아이인지라 가끔 우울해지거나 화를 내고 싶을 때가 있으면 오히려 아이한테서 배우고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내 자신을 돌아 볼 때가 많다.

며칠 전, 둘째 데리고 병원 안과에 다녀왔다.


매일 자기 전 눈약을 꼭 흔들어 넣어주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자꾸만 깜빡하고 잊어버리는 탓에 오늘은 둘째가 특별히 길을 자주 잃어버리는 나를 위해, 눈약을 넣기 전 쉐끼쉐끼를 부르며 조그마한 몸집을 물약과 함께 온 전신을 흔들어댔다. 그럴 때마다 귀여워서 못살겠는 이 마음을 어찌 달랠 길이 없어 나는 꼭 물어놓기 싶은 폭신폭신한 볼에 정신없이 뽀뽀를 퍼부어댄다.


“요렇게 귀여운 내 새끼,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라고 하면서 나만의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아이의 손이 어느새 내 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뱃살 가득한 똥배를.


“여기에서요.”


둘째를 가지기전, 시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활이 넉넉지 못한데다가 큰아이 하나만 키우면서 편안하게 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중에 이 세상에 우리 부부가 없으면 혼자 남게 될 큰아이를 생각하니, 나는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기 때부터 두 아이를 친정엄마가 키워주시는 탓에 그 동안 고생한 엄마에게 받기만 하고 보답대신 빚만 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에 너무나 미안하고 마음이 저려온다.

하지만 내 자신이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분신과 같은 두 아이를 이 세상에 데려온 것이다.


나에게는 아이들한테서 보고 배우고 느끼고 깨우치면서 삶과 인생을 배워나가고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의미 있고 아름답게 매일을 그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이다. 이 세상의 어머니들이 위대한 것처럼 이 세상 아이들도 하나같이 소중하고 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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