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 사용하는 가전제품,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과 노트북까지.
수천, 수억 가지의 물건들이 누군가의 생각에서 출발해 지금의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필요한 것만 사서 쓰는 소비자였을 뿐, 내가 직접 만들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내 시간과 노력을 돈과 바꾸고, 그 돈으로 다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사는 삶.
그것이 지금까지의 나였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에디슨처럼 위대한 발명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편안하고 익숙한 삶에 젖어 있던 내가 하루아침에 창조적인 천재가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발명가가 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것에 ‘업그레이드’를 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온라인 쇼핑몰 상품들을 더 고급스럽게 촬영해 포장했고, 부동산은 새로 인테리어해 매력을 더했다.
결국 남들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생각이라는 날개를 달아 더 잘 팔리게 만드는 것, 그것도 일종의 창조였다.
실제로 부동산도 예쁘게 손을 보니 세입자 구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내가 아는 부자들은 사치보다 ‘가치’에 집중한다.
그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불편을 겪는지 귀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겉으로 보이는 부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채워지는 부를 추구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멋진 옷을 입을 때, 웅장한 건물을 지날 때마다 나는 감탄한다.
“이런 멋진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랐을까?”
결국 모든 것은 생각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 중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할까?
두려움, 걱정, 근심, 불안…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다.
나 또한 그랬다.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선택과 판단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오늘의 생각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살고 싶을까?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얻게 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
세상은 언제나 화려함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더 사고, 더 즐기고, 더 소비하라고 손짓한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는 마법사 키르케에게서 세이렌의 위험을 경고받는다.
세이렌의 노래는 사람을 홀려 배를 파괴하게 만들지만,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직접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선원들의 귀에는 밀랍을 막고, 자신은 돛대에 묶어 노래에 끌려가도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대비한다.
배가 세이렌 근처를 지나자 그는 미친 듯이 풀어 달라고 외쳤지만, 선원들은 그의 명령대로 밧줄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결국 위험을 지나쳤다.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유혹 앞에서 이성적으로 나를 통제하는 힘,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쇼핑, 영상, 게임, 순간의 즐거움은 강렬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남는 건 공허함뿐일 때가 많다.
화려한 외부의 풍요로움에 매료되어도,
정작 내 마음이 가난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반대로 내가 목표를 이루고 성취를 느낄 때 찾아오는 행복은 오래 지속된다.
요즘 다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생각의 다이어트’, ‘관계의 다이어트’일지도 모른다.
불필요한 걱정, 잡다한 정보, 부정적인 감정, 의미 없는 관계를 비워낼 때
비로소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회가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우리는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통제하고 유혹을 피해 갈 수 있다.
인생의 운전대는 언제나 우리의 손에 있다.
가고 싶은 방향도, 속도도, 멈춤도 모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
그건 바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