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회사에 출근했는데 나와 짝을 맞춰 일하는 동료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타고 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날 잔업을 해서 피곤했기 때문일 거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부랴부랴 회사에 도착한 짝꿍은 다행히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남자 동료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늘 아침 택시 타느라 어제 잔업한 돈을 다 날렸네.”
또 다른 동료도 말했다.
“어제 잔업 괜히 했네~”
그때 내 짝꿍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아니지. 오늘 늦잠 자서 택시 탈 걸 생각하니, 어제 잔업을 안 할 수가 없었지.”
결과는 같다. 지각했고, 같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택시 때문에 돈을 쓰게 됐다’고 생각하느냐, ‘택시를 타도 남는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이를 만든다.
두 잔의 컵에 반쯤 물을 채워놓은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물이 반이나 차 있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반밖에 없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반이나 차 있다고 말한 사람은 긍정에 가깝고, 반밖에 없다고 말한 사람은 요즘 마음이 지쳐 있거나 근심 속에 잠겨 있을 수도 있다.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보고 “너무 예쁘다.”라고 느낀다면, 사실 꽃이 예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예쁜 상태인 것이다.
반대로 별 감흥이 없다면, 그것 역시 꽃의 잘못이 아니라 지금 내 기분이 그렇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태도는 결국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쌓여 있던 내면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옛날에 한 어부의 배가 마주 오던 배에 부딪혔다고 한다. 놀라고 화가 났지만 나중에 보니 그 배엔 사람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자 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한다.
사람이 화를 내는 순간에는 늘 ‘대상’이 필요하다. 허공엔 화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마주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크기도 달라진다. 평일에 분노·짜증·미움 같은 감정이 치솟는다면, 감정 조절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우리는 둘씩 짝지어 실링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지만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반장이 오더니 “지금까지 이것밖에 못했냐”며 화를 냈다. 어느 정도 더 하면 되는지 묻자, 자신이 얼마나 빨리 하는지 말하며 오래된 직원들만큼 해야 한다고 하고는 휙 돌아가 버렸다.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올라왔다.
그 역시 신입 시절이 있었을 텐데, 경험이 만들어낸 속도를 신입에게 똑같이 요구하는 것이 억울하고 답답했다.
나는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취소, 취소.”
“삭제, 삭제.”
라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마음속 우주의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부정적인 생각을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절반은 이겨낸 것이다.
내 에너지를 낭비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굳이 버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그날 반장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되뇌어 보았다. 처음에는 저항감이 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가 도와줬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고, 출렁이던 마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오히려 이런 순간들이 ‘하루빨리 더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걸음마를 넘어 달려보고 싶은 마음.
부의 길로, 성장의 길로.
세상은 결국 ‘당신이 누구인가’를 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누구는 불평하며 좌절하고, 누구는 그 안에서 기회를 찾는다.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그동안 다져온 내면의 힘과 가치가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친 결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