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딸아이가 “행복한 고구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삼밭에 인삼들이 가득 모여 살고 있었는데, 그중 한 인삼이 매일 “나는 행복한 인삼이야, 행복한 인삼이야” 하고 외치며 즐겁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인삼들이 그 인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우리처럼 비싼 인삼이 아니야. 너는 고구마야.”
그 말에 조금 놀란 고구마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구나! 그럼 나는 행복한 고구마야! 행복한 고구마야!”
그 이야기를 전해준 딸아이는 덧붙였다.
“엄마, 중요한 건 인삼이냐 고구마냐가 아니라 그냥 자기여서 행복한 거잖아.”
딸의 그 한마디가 마음에 깊게 박혀 한참 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인삼밭에 홀로 섞여 있는 고구마라 해도,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인정하는 당당함.
그 밝고 유연한 마음이 얼마나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는지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다.
엄마는 내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한쪽 구석에 밀어두었다고 한다.
아마 그 순간부터였을까.
나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을까 두려워 스스로를 숨기고, 조용히 숨어 지내는 법을 먼저 배웠다.
방학이면 사촌들이 놀러왔는데, 엄마는 나보다 그 아이들을 더 예뻐하는 듯했다.
내게는 친언니가 있었지만 언제나 언니가 우선이었다.
언니와 싸우기라도 하면, 잘잘못을 묻지도 않고 엄마의 빗자루는 늘 나를 향했다.
억울함이 먼저였고, 그다음엔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내 자존감은 조금씩 깎여나갔고, 성격은 점점 괴팍해졌다.
나는 이 세상에 쓸모없는 아이인 것만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누군가가 된 척하며 살아왔다.
누구보다 착한 딸, 책임감 있는 아이, 남보다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나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만약 그 시절의 내가 이야기 속 고구마처럼
“나는 그냥 나여서 행복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였더라면 얼마나 달라졌을까.
어릴 적의 나에게는 나를 지켜줄 단단한 내면의 뿌리가 없었다.
비바람에 잘 휘어지고, 천둥소리만 들어도 금방 무너질 것 같은 그런 아이.
그 긴 인생을 어린 마음으로 버티기엔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릿해진다.
아이 둘을 키우며 문득문득 깨닫는다.
이야기 속 고구마처럼, 내 아이들은 때로는 세상 기준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남의 잣대보다 자신의 행복을 먼저 찾으려는 그 모습이 참 대견하다.
아마 내가 겪었던 부족함과 외로움을 본능적으로 반복하지 않으려는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스며든 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지난날의 나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떤 존재였든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과거의 기억은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고,
내면의 언어와 생각을 바꾸는 순간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이제는 안다.
정말 중요한 건 세상에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평생 함께 살아갈 ‘나’라는 사람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느냐이다.
남과 비교하며 나를 깎아내렸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 시절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 상처가 있었기에 이제라도 나를 다시 세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다.
오늘부터라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주고,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해주려 한다.
“괜찮아, 너는 너라서 충분히 소중해.”
그 고구마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진정한 성공이란
가장 먼저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세상이라는 큰 울림도, 행복이라는 감정도 결국은 내 마음 안에서 자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