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지금 이 자리에서 멈춰 있고 싶었다. 머릿속도 텅 비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야말로 ‘제로’의 상태였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갱년기가 온 것 같다고 하고, 아들은 차라리 회사를 때려치우라고 한다.
그러다 남편은 “내가 더 많이 벌어올게”라고 다독이고, 아들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줄 알고 대상 없는 화풀이를 대신 해주기도 한다. 철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저 그들의 말을 우주로 날려 보내며 다시 눈을 감았다.
김상운 작가님은 ‘이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내 몸은 빛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홀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동안 그렇게 애쓰며 살았을까?
혹시 지나친 집착과 욕심을 붙들고 있었기에 더 지치고 힘들었던 건 아닐까?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이 있다. 생각을 내려놓아 비워지는 그 공간에야 비로소 만족과 풍요, 감사가 들어온다고 한다.
나는 늘 나의 성공을 가로막는 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뒤늦게 깨달아버린 나이, 가족이라는 책임,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결국 나를 가둔 건 외부의 현실이 아니라 내 생각의 울타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의 길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부동산 임장을 다닐 때도 예쁜 건물을 보면 ‘내 종잣돈도 없는데 언제 이런 아파트를 사겠어…’라는 생각이 불쑥 올라와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러다 “대충 태어난 것 같은 내 인생이 서럽다”라는 감정에 휩싸여 불평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만 즐겁게 살자며 친구나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다가도, 어느새 그들의 생각에 김밥처럼 말려들어 에너지가 바닥나 집에 돌아오면 더 무기력해졌다.
로버트 기요사키는
“당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네 사람이 미래의 당신이다.”
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함께하는 사람의 생각을 닮아가고 결국 삶의 결과도 비슷해진다.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애쓰며 보냈다.
긍정적이고 큰 꿈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이하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내 꿈은 조금씩 더 선명해졌다.
심지어 마음을 비우기 위해 오래된 연락처들도 모두 정리해버렸다.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나는 ‘꼴찌라도 부자의 줄에 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화장실 갈 때조차 책을 들고 갔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동기부여 영상을 틀어놓았다. 잠들기 전에는 무의식에 메시지를 심겠다며 좋은 영상을 반복 재생했고, 꿈과 목표를 종이 위에 100번씩 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부자가 되었을까?
물론 변화는 있었다.
나는 환경을 바꿨고 직장도 바꿨다.
하지만 정작 생각과 주변 사람들은 바꾸지 못했다.
부정적인 생각의 주파수는 비슷한 상황과 사람을 끌어당겼고, 결국 나는 같은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아무나 곁에 두지 않는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신중하게 선택한다.
그만큼 주변은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 자신을 바꿔야 한다.
내 생각을, 무의식을, 행동을, 습관을.
그리고 점차적으로 주변 환경과 함께하는 사람들도.
어느 책에서 본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지만, 친구와 멘토는 선택할 수 있다.”
밝고 긍정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좋은 기회와 운을 끌어당기며 스스로 좋은 에너지를 만든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매일 꾸준한 명상으로 내면을 가다듬고,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확언으로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아름다운 꽃과 달콤한 열매를 맺으려면 뿌리가 건강해야 하듯,
나의 내면이 든든해야만 삶의 기둥이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나는 그 뿌리를 가꾸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제로의 하루’가 다시 피어날 날들을 위한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