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따뜻한 물소리가 싱크대 벽에 부딪히며 잔잔하게 퍼지는 순간이었다.
습관처럼 접시를 헹구고 있는데, 남편이 조용히 내 옆에 와 섰다.
말없이 수건을 건네고, 젖은 손을 닦아주며 “여기, 내가 도울게.”
오랜 출장으로 집을 비우던 사람이 이렇게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싱크대 불빛이 조금 더 은은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한 달 내내 외지로 떠나는 사람이다.
어쩌다 집에 돌아와도, 마치 ‘잠깐 들린다’고 말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만큼.
그동안 회사와 아이들 돌보는 일로 하루하루가 버거웠던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의 쉼표를 꺼내놓았다.
“나… 매일 애들 끼니 챙기는 게 너무 힘들어.”
남편은 설거지 수세미를 내려놓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힘들지. 정말 고생 많다.”
그 말,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남편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남편은 늘 나의 감정에 귀 기울여 주고,
내가 들고 온 세상의 무게를 잠시나마 대신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득 떠올랐다.
정작 남편이 힘들다고 말할 때 나는 얼마나 그의 편이 되어주었을까?
얼마나 그의 이야기를 ‘남편의 자리에서’ 들어주었을까?
이 질문은 가슴 한구석을 찔렀고, 그 작은 찌르침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첫째가 어릴 때, 나는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 낯설고 두려웠다.
그래서인지 사랑을 조급함으로 착각했고,
내 불안과 집착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하기 싫다는 공부를 억지로 앉혀 시키고,
때로는 화를 참지 못해 손찌검까지 했던 지난날들.
지금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내 무지함이 아이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겼을지,
그 작은 손이 얼마나 떨렸을지.
독서를 독하게 하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시작했고,
아이에게 사과의 마음을 담은 긴 편지를 썼다.
그런데 편지를 아직 다 쓰기도 전에
언제 왔는지 모르게 내 뒤에 서 있던 아이가
그 글을 읽고, 소리 없이 어깨를 흔들며 울고 있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아이의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마치 내가 오래전부터 외면해왔던 진실을 보여주는 듯했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내가 얼마나 못난 엄마였을까.’
‘아이 마음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날 이후 나는 결심했다.
우리 가족만큼은,
세상이 등을 돌려도
무조건 서로의 편이 되어주자고.
요즘 우리 집은 조금 달라졌다.
아이들이 투덜거리며 말한다.
“엄마, 학교 가기 싫어.”
예전 같았으면 잔소리부터 쏟아냈겠지만
이제는 숨을 고르며 말한다.
“그래, 그 마음 알아. 엄마도 어릴 때 그랬어.
근데 인생은 네가 선택하는 거야.
학교를 가든 안 가든 그건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야.
다만 지금 네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아이는 긴 침묵 끝에 말한다.
“…그래도 갈게.”
또 밥 먹기 싫다고 하길래
“그치. 맨날 먹던 밥이니까 질리지.
오늘은 우리 맛있는 거 시켜 먹자.”
라고 하니,
그 작은 얼굴들이 한순간에 활짝 피어난다.
그 웃음을 보면,
나는 그저 살아 있는 것이 벅찰 만큼 행복하다.
아이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이런 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이제 안다.
사람의 마음은 억지로 열리는 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 마음의 잠금장치를 푸는 방법은
조언도, 가르침도 아닌
그저 곁에 서서 들어주는 일,
그리고 ‘네 편이야’라는 조용한 응원이라는 것을.
공감은
오해를 녹이고,
감정을 풀고,
관계를 다시 연결한다.
말로 다 하지 않아도,
그저 한 사람의 마음에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안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돌아보면, 가족이란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관계가 아니라
힘겨운 하루 끝에
조용히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먼저 공감하는 사람이 되자.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서로를 더 따뜻하게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