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어?"
연습장에 갔던 남편이 들어오면서 묻는다. 정오가 넘었다. 열두 시 반이었다.
"안 왔어요."
마누라 대답에 남편이 실망한 기색으로 말했다.
"할 수 없이 내일 따러 가야겠네. 오늘은 나가서 점심 먹고 산책이나 하지 뭐."
작은 등산 가방에 오백 미리 물 두 통 챙기고 쭐래쭐래 남편을 따라나선다. 현관문을 열며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나서는데, 키가 작은 아주머니 한 분이 당신 키만 한 걸 우리 집 앞에 놓고 가시며 "택배요~"라고 작게 외친다.
나보다 앞에 서서 문을 열던 남편이 얼씨구나 하며 현관문의 잡았던 손잡이를 얼른 놓았다. 다행히 내가 다시 잡았다.
장대가 궁금한 남편이 테이프로 칭칭 동여맨 택배를 손가락으로 뜯으려고 하자, 내가 잽싸게 물건을 잡으며 말했다.
"그냥 이대로 가지고 내려가서, 이따 거기서 풀어요."
현관문에 발을 채워서 열어 놓고 칼 하나와 대바구니, 종이 운동화 상자 하나를 재빨리 챙겨서 나온다. 이십사층까지 올라갔다 온 택배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었다. 남편이 아주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였어요, 이거 기다리다가 안 와서 그냥 나가려고 했거든요. 감사합니다~"
"그게 뭐예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감나무 따는 장대요~"
남편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정말 기막히게 우연한 나이스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단 일이 초만 어긋났어도, 오늘 우리는 장대를 획득할 수 없었을 거다.
남편이 내 손에 들려있는 종이상자 등을 보며, 분리수거하러 가는 줄 알고 로비에서 눈짓을 한다.
"이거 분리수거할 거 아니에요. 그냥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돼요."
대바구니, 감나무 장대, 종이상자 등을 싣고 문의 부부농장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두 시에 갔다가 대기자 명단에 등록도 못했었다. 오늘은 기어코 먹고 말 테다. 대기자 명단에 등록하고 식당 옆에 있는 학교로 들어갔다.
교문 옆에 서있는 감나무들은 일부러 청소라도 한 듯이, 나무가 깨끗이 비어 있었다. 학교 뒤로 돌아가 본다.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가 세 그루 또 있었다. 타깃을 확인한 부부가 조용히 눈짓을 나누고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 앞에 할머니들이 오늘은 여섯 분이나 나와 계셨다. 여기가 무슨 시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점점 할머니들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남편이 쓰윽 둘러보다가, 토란 바구니에 시선이 꽂혔다. 오늘은 토란을 사야 하는 날이다. 나는 가방 속에서 오천 원 한 장을 꺼내 드렸다. 옆에 할머니들이 이것저것 사가라고 야단들이시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장비를 갖춘 남편이 감나무 아래 섰다. 마누라는 장비빨 기념으로 남편 사진 한 장 찰칵 찍어준다. 그게 뭐라고 늙은 남편이, 장대 들고 감나무를 향해 전진하는 장수의 폼을 잡았다.
육손이를 끼워 감을 따던 남편이, 연장을 감망주머니로 바꿔 끼웠다. 감망주머니로 갈아 끼우고 나니, 빨갛게 익은 홍시가 육손이에 찔리는 상처 없이 깨끗하게 잘 따진다. 남편이 신이 났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태양을 마주하고 감나무 꼭대기에 집중한다. 마누라는 아래에서 감망주머니가 내려올 때마다 뛰어다녔다. 바구니 한가득, 종이상자 한가득 붉게 익은 홍시가 가득 찼다
따다가 터진 홍시 몇 개는 학교 수돗가로 달려가서 씻어서 먹었다.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홍시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남편이 바구니와 장대를 차에 실으며 말했다.
"마누라, 올해 감농사는 풍년이구려~"
시골 학교에는 아직도 따지 않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2021년 10월 24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