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의 오라토리오를 듣다가 길을 놓쳤다. 좌회전 줄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직진 중이다. 괜찮다. 다음번에 좌회전 줄로 들어가면 된다.
라디오 디제이가 김미숙이었나? 아니다, 남자 목소리였다. 디제이 이름도 프로그램 제목도 모른다. KBS FM에서 들려오던 하이든과, 소프라노의 음성에서 전해오던 느낌만 아스라이 기억날 뿐이다. 네 시간도 안된 일인데, 벌써 옛일 같다.
디제이가 로마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 <천지창조> 그림에 얽힌 미켈란젤로의 일화를 소개하며,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틀었나 보다. 몇 해 전 작은 아들과 둘이서 그 성당에 가서 그림을 보았었다. 패키지 유럽 여행 중에 끼어 있던 일정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누워 있던 습관 때문이었다고 했다. 누워있는 습관이라면 나도 만만치가 않은데, 누구는 미켈란젤로이고 누구는 그냥 늙은 아줌마다. 그래도 지금 살아 있는 놈이 장땡인 건 분명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기니까, 미켈란젤로가 이긴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없으면 미켈란젤로도 쥐뿔 아무것도 아니다.
디제이는 게으름이 가져온 위대한 예술작품의 탄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디제이는 때로 게으름이란 것이,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창조해내는 긍정의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드문 일임에는 틀림없다.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나는, 지금도 누워서 휴대폰으로 깨작깨작 글을 쓴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오전에 친정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유월 달에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후부터 시작된 간지럼 증세가 극도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내가 무심했다. 어머니보다 젊은 나도 백신 접종 후, 주사 맞은 팔에 간지럼 증세가 있다가 없어졌다고 안심을 시켜드렸었다. 동네 병원 다니시며 주사 맞고 약 드시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증세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고작 그 치다꺼리하고 와서 나는 또 누웠다. 요즘엔 반나절 무슨 일만 처리하고 와도, 몸이 피곤하다. 내 나이에 직장 다니는 여자들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끝났다. 싫어도 일어나야만 한다. 얼른 빨래 널고 다시 누우면 된다.
미켈란젤로는 누워서 천장 벽화를 궁리했다는데, 나는 무슨 작품을 궁리해야 나의 게으른 습관이 돌팔매를 덜 맞으려나?
(2021년 10월 25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