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풍경

by 도라지

병원 밥이 맛있을 리도 없는데, 어머니는 독한 주사를 맞고도 하룻 새에 기운이 나신 거 같았다. 항문 속까지 간지러웠다가, 주사 몇 번에 간지러움이 조금 덜해지니 비로소 살 거 같으신가 보다. 독도 이럴 땐 약이다. 간지러운 게 지나서 아플 정도가 되면, 애 낳는 고통보다 심해서 죽겠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어머니 말씀 듣고 처음 알게 되었다. 어머니 증세가 딱 그랬다.


척추에 쇠 박는 수술을 두 번이나 하신 어머니는, 팔순이 훌쩍 지난 나이에도 수면 없이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한 번에 하는 양반이다. 비수면 대장 내시경쯤 어머니껜 일도 아니었다. 그런 양반이 이번 간지럼증에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단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두 딸들 마귀 들렸다고 쫓아다닐 적에도,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말씀 같은 건 없으셨던 분이다. 나 살아온 건 어머니 삶에 비하면 이도 안 났다.


간지럼증 때문에 넉 달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다고 했다. 어제 병원의 불편한 침상에서 넉 달만에 처음으로 잠을 푹 잤다고 하신다. 진작 큰 병원 가서 진료받고 입원시켜 드렸어야 했다.


기운이 나셨는지, 넋두리가 쉴 새가 없으시다. 옛날 육이오 사변 때 두 살 난 막내 이모 업고 나온 거부터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으신다. 듣다가 지친 내가 슬며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오인실 병실 끝으로 문 하나가 열려 있다. 슬쩍 안을 들여다본다. 침상 하나와 소파 겸 베드 하나가 서로 여유 공간을 두고 띄워져 있다. 벽걸이 티브이는 오인실보다 작지만, 작은 냉장고 하나가 딸려 있다. 일인실이다. 오인실에는 냉장고가 없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께 물었다.


"여사님, 여긴 1인실인가 봐요~"

"엄청 비싸요, 하룻밤에 16만 원이나 해요."

"여사님, 일하는 건 힘들지 않으세요?"

"왜 안 힘들어요? 힘들죠~"

"한 달에 몇 번 쉬세요?"

"빨간 날은 다 쉬어요~ 힘들어도 할 만은 해요. 왜 해보시게요?"

"면접도 보지요?"

"그럼요, 다른 시험은 없어요~"


나는 요즘 일만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부터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그 자체에 관심을 갖곤 한다.


어머니 점심 식판을 치워드리고, 맞은편 아주머니 식판도 치워드렸다. 남편 분이 시력이 안 좋아서 장애 등급을 갖고 계신다 했다. 노안이어도 그나마 잘 보이는 내가 낫다. 어머니 옆에 할머니 두 분은 식사도 안 하고 주무신다. 배식 담당 여사님이 식판을 놓고 가셨다. 모두가 우리처럼 고만고만한 살림들을 살고 계신 분들이다.


죽고 싶을 만큼 간지럽다가 제법 간지러움이 가라앉아서 마음까지 편안해지신 어머니는, 불편한 병원 침상에서 며칠은 더 계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구십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자꾸만 내일 퇴원하라고 하신다. 그 기나긴 삼심년 세월 동안 여행 한번 변변히 못하신 어머니는, 일인실도 아닌 오인실 병상에서 휴가를 보내고 계시는 것처럼 모습이 편안하다.


나는 통장 잔고를 떠올려본다. 의사 선생님이 퇴원하라고 할 때까지 며칠은 더 병원에 계시겠다는 어머니를, 일인실로 모셔가면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까 계산을 해본다.



(2021년 10월 26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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