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너무 신나고 재밌다. 이 재밌는 걸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후회될 정도다. 그런데도 올해 달력을 한 장 남겨두고, 마음이 쓸쓸하다.
그래서 일 년 반 만에 남자 지인을 만났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 아래다. 누나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 뒤에 씨자를 붙인다. 센스 있다. 나보다 한참을 어려도 어린 티를 안 낸다. 더 센스 있다. 그래서 아주 가끔 보는 친구로 지낸다.
감자탕에 나는 청하를 마시고, 그는 소주를 마신다. 각개전투다. 2차로 그 흔한 맥주집을 찾다가 못 찾고 노래방으로 갔다. 실컷 뛰면서 노래나 부르자 했다. 노래방에 갔더니, 맥주는 팔지 않는단다. 청소년들이 주로 가는 노래방이었다. 다시 나왔다.
한참을 걸어 오래돼 보이는 노래방엘 들어갔다. 사장님이 나보다 더 언니다. 예쁘게 웃으시지만, 삶의 무게가 내려앉은 피곤하면서 순박한 웃음이다. 나는 그 웃음이 왠지 좋았다.
여기도 진열된 냉장고 안에 맥주는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노래방에서 맥주를 못 팔게 돼있는 건가 궁금해졌다. 일부러 묻지는 않았다. 사장님이 당연히 맥주가 있다고 했다.
사장님이 5번 방이라며 마이크 캡을 준다. 5번 방에 들어갔다. 아까 건물 외관이 오래된 건 유도아니었다. 노래방 기계가 거의 칠순이시다. 내가 언니니까 우선 부른다. 어~, 소리가 나긴 나는데 너무 작다. 그가 말했다. 마이크 에코에 문제가 있는 거란다.
그보다 언니지만, 행동이 민첩한 내가 나가서 말했다.
"사장님, 마이크가 이상해요. 노래를 내가 생목으로 불러야 해요, 한번 와보세요~"
사장님이 나를 따라 5번 방으로 들어왔다. 무선 마이크를 들고 뽕짝 몇 소절을 계속 부르신다. '나도 너희들만큼은 부르지?'라고 속으로 말을 건네는 거 같았다.
부르실 만큼 부르신 사장님이, 마이크가 충전이 안된 거 같다며 6번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6번 방은 유선 마이크다, 차라리 이게 나을 거 같았다.
그가 노래를 하나 부르기 시작했다. 어~, 그런데 이번엔 스피커가 이상하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기운이 없어서 스피커가 소리를 증폭시키질 못한다.
사장님을 또 부르러 내가 나갔다. 카운터 뒤로 깔린 다다미에 사장님이 누워계신다. 사장님을 깨워 6번 방으로 같이 들어갔다. 그가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부르는 중이었다. 사장님이 6번 방에서 스피커 소리 체크는 안 하시고, 잘생긴 젊은 남자의 노랫소리만 듣고 계신다. 내가 옆에서 말했다.
"이 친구, 가수예요. 잘 부르죠?"
"네, 정말 잘 부르네요~"
그가 스피커가 약하지만, 그냥 이방에서 놀자고 한다. 내가 사장님께 말했다.
"스피커도 힘이 없어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불러볼 테니까 서비스나 많이 주세요."
피곤해 보이는 사장님이 걱정 말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리고 6번 방을 나가신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학생 시위대마냥 주먹 쥐고 불렀다. 그가 나에게 김아중의 <마리아>를 요청한다. 내가 소리를 내지르는 데 좋은 성량이란다. 마리아를 악을 쓰며 불렀다. 곡이 끝나고 내가 말했다.
"우리 충대로 한 팀 해서 같이 대학가요제 나가자~"
그가 극구 사양을 한다, 한 팀 하기 싫단다. 그는 충남대 출신이고 나는 충북대 출신이다. 청주에선 "충대"가 "충북대"를 뜻하지만, 대전에선 "충대"가 "충남대"를 뜻한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가 벌써 십 년이 되었다. 그가 일하는 연구원 잡지 출간 때문에 알게 되었다. 십 년 전에 내게 그를 처음 소개하던 다른 박사가 말했다.
"여기는 미스 충북 진, 이쪽은 미스터 충남 진~ 진끼리 만난 걸 축하하면서 한 잔~"
그런 농담 아주 쓸만하다. 나는 술자리 멘트에서도 미스 충북 진 하기엔 면목이 없지만, 그는 충분히 미스터 충남 진해도 될법한 외모다.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타고났다. 게다가 가수 해도 될 만큼 노래 실력도 출중했다.
어제는 기운이 달리는 스피커 방에서, 감히 국카스텐의 노래까지 따라 불렀다. 택시를 타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깨동무라도 하고 뛰어놀 걸 그랬나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도 미스터 충남 진 친구가 한참 언니인 나와 이렇게 놀아줄지 그걸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