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을 배운 건 삼십 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갈 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 유치원 자모들과 어울리며 맥주를 마시기 시작한 게 나의 술인생의 첫 번째 기억이다.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성당 부설 유치원이었다. 애들 데리고 엄마들이 노래방에 갔다가 밤 열 시에 집에 들어간 다음 날, 남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친정어머니가 나에게 억지로 성수를 먹이시며 기도를 하셨다. 어머니에게 나의 행동은 그야말로 사탄의 꼬임에 넘어간 '죄악'과도 같은 짓과 다름없었다.
멀쩡하게 4년제 국립대학을 나오고도 대학 시절 술을 먹은 적이 없다고 말하면 히키코모리나 어디 모자란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대학 시절 남자 선배로부터 그 흔한 자판기 커피 한잔 얻어먹어보지 못한 불운한 청춘을 보낸 여자가 바로 여기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청춘을 너무 허망하게 보냈다는 후회가 요즘 들어 뒤늦게 드는 중이다.
아이들이 학교 들어갈 무렵 글 쓰는 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 방송국 기자 선배와의 인연으로 대학 동문회 활동을 시작한 지가 벌써 십수 년이 훌쩍 지났다. 대학시절 받아보지 못한 선배들의 사랑을 보상이라도 받고 싶었던 건지, 나는 어느새 동문회에 유일하게 참석하는 여자 동문이 되어 있었다. 십수 년을 함께 늙어가다 보니, 선배들은 이제 나의 성별조차 구별하지 않고 남자 후배인 양 언어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어떤 후배는 무심결에 나를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동문회에 고정적으로 참석하고 동문회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유일한 여자 동문이라는 이유로, 선배들은 나에게 여성 동문들의 동문회 참석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날엔 동문 밴드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자보를 쓰기도 하고, 밥도 사고 술도 사며 환심을 사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동기 여성 친구에게 부회장 감투를 씌어주고 참여를 독려했다. 그 친구 임기가 내년까지인데, 임기 후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십 년을 넘게 동문회 활동을 하면서 그래도 나는 나를 선배로 인정해주는 후배 두 녀석은 키워두었다. 이만하면 내 할 도리는 한 셈이다. 조직의 지속성은 화합과 후배 양성에 있다고 믿고 있다.
요즘 시대에 동문회를 하고 있는 학과가 드물다고 한다. 시대가 그러하니까 우리도 적당히 하는 데까지만 해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동문회의 숨을 유지시키려고 이렇게 안달을 하고 고민을 하는 걸까. 나에겐 이상적인 공동체에 관한 꿈같은 것이 하나 있다. 우리 동문회를 통해서도 그러한 꿈을 실현시켜보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었다. 남편 말대로 참 돈 안 되는 거에만 쓸데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상한 병이 있긴 있나 보다.
그러다가 며칠 전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여자 후배들을 섭외하기에 앞서, 잘 생긴 남자 후배부터 영입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동문회라고 나왔는데 다 늙수그레한 선배님들만 앉아계신 곳에, 선배님들이 찾는 예쁜 여자 후배들이 오고 싶겠는가. 이 간단한 음양의 진리를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에, 실제로 내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멍청이'하며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줌마들이 왜 젊은 남자 가수에 열광하고 팬클럽에 가입하겠는가. 우리 동문 모임에 공유나 현빈 같은 남성 동문이 나오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동문님들께 고하는 글>이라는 제목을 단 대자보 따위 쓰지 않아도, 저절로 여성 동문들은 줄지어 나오게 되어 있다.
우리 후배님들 중에 공유나 현빈 급의 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 후배들이 있는지, 그것부터 우선 조사에 착수해야겠다. 내 욕심 채우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먼저 설렌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