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산책

by 도라지

"오늘은 어딜 갈까?"라고 묻는 남편의 질문에 "세종 호수공원 가요~"라고 내가 답했다. 남편의 롱 패딩 겉옷을 챙기며 작은 물병 두 개랑 장갑 두 켤레, 귤 여섯 개를 장바구니 가방에 집어넣고 남편을 따라 잽싸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장바구니 가방이 나의 시그니처 백이다. 뭐든 필요한 물건들이 다 들어간다. 장바구니 가방 속엔 또 다른 장바구니 가방이 항상 두 개는 더 들어있다. 오는 길에 마음껏 장도 볼 수 있다.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을 때, 우리 부부는 주로 산책을 다닌다.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뒤에도 산이 있지만, 주말에는 차를 타고 조금 멀리 나간다. 그래야 다른 동네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어디에 뭐가 새로 생기고 도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가 있다. 청주 가까이 있는 곳은 안 가본 데가 없을 만큼 우리 부부는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녔다.


어느 해 겨울엔가 남편이 이끄는 대로 따라나섰다가, 급기야 내가 "119를 불러달라"고 남편을 겁박하는 사태까지 빚어진 적이 있었다. 빙판길에 취약한 나에게 산자락 내리막길에서 맞닥뜨린 빙판길은 그야말로 죽음이었다. 스틱이나 아이젠도 준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119도 부르지 않고 무사히 내려오긴 했지만, 그날 이후로 남편은 나의 동의 없이 행선지를 임의로 정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함께 산책을 다니는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은 부부로 보이기가 쉽다. 물론 그것도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는다. 무턱대고 생각 없이 일 저지르는 남편의 기질 때문에 평생을 속 썩고 산 아줌마는 올해 5월에도 속을 된통 썩은 적이 있었지만, 아직 우리 부부는 같이 산책을 다닌다.


그런데 천둥벌거숭이 같기만 했던 남편이 요즘 들어 조금 변한 것도 같다. 쌀도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된다고 하던데, 남편도 일을 저지를 만큼 저지르고 나서야 그의 기질을 스스로 반성할 줄 알게 된 것일까.. 남편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큰아들을 설득하며 다독이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데, 나는 속으로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오늘은 집에서 차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세종 중앙공원을 한 달 사이에 벌써 세 번째 방문했다. 세종 사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곳인데, 산책코스로 강추할 만한 곳임에 틀림없다. 중앙공원과 호수공원을 가볍게 산책해도 두 시간이 훌쩍 걸린다.


내 나이 스물두 살에 나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던 남편과, 호수공원 송담만리 카페에서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셨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겨울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남편은 12월의 햇살을 받으며 비타민D를 열심히 생성하고, 나는 창밖으로 바라다보이는 공원 풍경 속에 잠시 세월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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