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터 샷

by 도라지

지난 유월에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온몸에 발진 증상이 심했던 친정어머니가 오늘 3차 접종을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2차 접종 후 6개월이 경과했으니 건강상태가 괜찮다면 맞는 게 좋을 것도 같아서, 일단 의사 선생님의 소견도 궁금하여 어머니 모시고 병원엘 올라가 보았다.


어머니 동네에 있는 작은 내과의원 안에 사람들이 빼곡했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어림잡아 열여덟 명은 돼 보였다. 의사 선생님 한분이 백신 접종과 일반 환자 진료를 병행하는 것 같았다. 앞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삼십 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어머니는 병원에 앉아계시라 하고 나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잽싸게 은행 일을 보고 왔다.


내 걸음 속도는 일반인보다 두배 정도 빠른 편이다. 십수 년을 각종 무술 체육관과 산과 운동장에서 단련한 남편보다 집에서 겨우 스트레칭 정도만 하는 내가 걷는 속도가 빨라서, 하루는 유심히 남편의 걷는 모습을 지켜보며 연구해 본 적이 있었다.


남편이 나보다 5센티미터는 키가 큰 걸로 미루어볼 때, 다리 길이도 나보다 길면 길었지 짧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내 빠른 걸음과 다리 길이와는 상관성이 그다지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남편의 걸음걸이를 살펴본 결과, 남편보다 내가 고관절과 대퇴부를 더 크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대부분 '걷는다'라고 생각할 때,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근육을 사용해서 걷는 것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그 사람이 걸어가는 뒷모습 속에서도 그가 어느 부위의 근육과 관절을 사용해서 걷고 있는지가 나타난다. 사람마다 걸을 때 신체 부위별 사용량은 매우 각기 다르다.


빠르게 일을 보고 병원으로 올라와서, 춥다고 이 옷 저 옷 잔뜩 껴입고 나온 어머니의 웃옷들을 정리해서 드디어 진료실로 어머니와 함께 들어갔다. 진료실 의자에 앉은 어머니가 2차 접종 후 가려움증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웃옷을 젖가슴 위로 들어 올리며 발진의 흔적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셨다. 구십을 바라보시는 어머니가 오십 대 의사 선생님 앞에서 젖가슴을 다 드러내 놓고 계시는데도, 의사도 간호사도 그리고 나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이 오늘은 접종하지 말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일으켜 세운 뒤 겉옷을 입혀드리고 단추를 채워드렸다. 이층 병원 앞에 엘리베이터 버튼이 또 작동이 안 돼서, 어머니를 부축해서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아직까지는 이십 대 아들들보다도 걸음이 빠른 나지만, 머지않아 나도 어머니처럼 걷는 것마저 힘들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이십 대 때는 청진기가 옷 위로 지나가는 것도 부끄럽고 싫어서 감기에 걸려도 병원을 찾지 않았던 나이지만, 언젠간 나도 어머니처럼 여기가 아픈 곳이라고 웃옷을 거침없이 들어 올리는 날도 올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드시라고 소고기, 돼지고기를 사서 장을 보고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후에 출근하는 큰아들 밥상을 차려주려고 부리나케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하늘은 늙은 어머니의 내려앉은 젖가슴 근처에 난 발진의 흔적처럼 잿빛을 하고 있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생상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늘따라 더 처량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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