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앗간

by 도라지

터미널 근처에 있는 종합 병원 응급실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큰아들은 회를 좋아한다. 병원과 집은 차로 육 분 거리에 있는데, 그 사이에 삼학도수산이라고 꽤 크고 유명한 횟집이 있다. 아마 청주에선 규모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은 그 집은 작은 수산시장을 방불케 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장식했던 아빠의 휴대폰 낙하 사건 이후로 엄마의 심기가 편치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제 입맛을 충족시키려는 건지 근무가 끝나는 밤 열 시마다 큰아들은 나흘째 삼학도 수산에서 만원~만이천 원짜리 회를 포장해서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기분이 꿀꿀한 건 꿀꿀한 거고, 녀석이 사들고 온 회를 어떤 날은 아들과 둘이서 어떤 날은 남편까지 셋이서 몇 점씩 나누어 먹고 있다. 아들 녀석이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오늘은 아들이 무얼 사들고 오려나 기다려지는 마음이 생겨버렸다. 그 옛날 어릴 적에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유명한 음식점에서 구워낸 야끼만두를 사들고 오시던 겨울밤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틀 전이었나 보다. 아들이 그날도 방어회를 한 접시 포장해서 귀가한 밤이었다. 소파에 앉아 혼자서 두피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던 남편까지 합세하여, 식탁에 셋이 둘러앉아 만 원짜리 회 한 접시를 놓고 먹고 있을 때였다. 아들 녀석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이 양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에 모텔서 변사체로 발견된 오십 대 아주머니 시신이 들어왔는데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실려온 거예요. 그러고서 육십 대 아저씨 시신도 그 모텔에서 발견됐다는 뉴스가 뜨더라고요. 아주머니 시신을 보는데 기분이 몹시 안 좋았어요. 아주머니 가족들이 시신 부검을 의뢰했대요."


터미널 근처에 있는 병원이라서 다른 지역에 있는 병원보다 유난히 사건사고를 많이 접하게 되는 응급실이었다. 그런 좋지 않은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아들 녀석은 방어회를 참 맛있게도 먹는다. 나도 옆에서 "너무 가슴 아프다, 별별 사건도 참 많구나."라고 말하면서, 회 한 점을 야무지게 초장 듬뿍 찍어 상추에 싸 먹었다. 돌아가신 분의 슬픈 사정은 사정인 거고, 나도 내 인생 초라하게 끝맺지 않으려면 일단 먹고 볼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야끼만두를 대나무 도시락에 담아서 사 가지고 오셨던 그 시절보다 더 옛날에는, 지금처럼 모텔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들이 살던 시절을 떠올리면 될 듯하다.


그 시절에는 모텔 대신 물레방앗간에서 남녀의 애정행각이 벌어지곤 했다고 한다. 나도 물레방앗간이라는 곳을 어디 문학관이나 전시관에서나 본 기억밖에 없으니, 자세하게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다.


아마도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하얗게 밤을 밝히는 밤보다는 은은한 달빛이 어슴프레 어둠 속으로 부서져 내려앉는 날에 물레방앗간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보름달빛은 제법 노골적으로 남녀의 정체를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도 같아서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그 옛날에 결국 뜨거운 몸을 이기지 못한 남녀가 향했던 곳도 한적한 물레방앗간이었겠지만, 어느 소설에서도 물레방앗간 살인 사건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주는 은근한 신비로움이 두 남녀의 뜨거운 욕정을 순박하고 여린 심성으로 물들여주는 까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텔 건물이라고 해서 달빛이 들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누군가 방안으로 달빛을 들이기 위해 창문을 여는 행위를 일부러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달빛 아래 흘러내리는 고요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신비한 체험을 한 남자라면,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사랑을 나눈 여자를 살해하는 짓은 결코 벌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의 상상은 말한다. 지혜로운 우주의 신비한 기운 속에는, 인간의 마음속에 악함이 들어서는 그 한순간을 상쇄시킬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 가운데에는 사랑하는 두 남녀가 나누는 섹스도 포함된다. 단지 생물학적인 해석에 근거한 종족번식과 유전자 전승 등의 기능으로서가 아니어도, 두 사람이 몸으로 나누는 대화 속에는 존재의 신비가 들어있다. 인간이 인간을 통해 저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놀라운 신비를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토끼가 방아를 찧을 것만 같은 달나라 얘기의 전설은 아주 근거 없는 표현이 아닌 것도 같다. 달빛이 내려앉는 물레방앗간에서는 한낮에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운 욕망들도 동화 속 마법처럼 신비로운 전설로 바꾸어 놓는다.


모텔방에서 숨진 오십 대 여자와 육십 대 남자의 석연치 않은 사건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우리가 사건의 정황을 추측하는 게 어렵지 않은 것은, 인생을 살아볼 만큼 살아버린 이 허무한 세월 탓일 게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고, 덧없는 인생의 마침표를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인지하는 시간의 선상에서 당당하고 평화롭게 찍을 수 있으려면, 나는 젊은 아들보다 회 한 점이라도 더 먹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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