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손에 장갑을 끼지 않고 걸어도 춥지가 않았다. 문의 부부농장에서 조금 늦게 점심을 먹고, 세시 브레이크 타임 시작과 동시에 식당 문을 나섰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은 채로 남편과 둘이서 문의 향교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향교를 둘러싸고 있는 동네에는 근사하게 지은 집들이 몇 채 서 있다.
그 동네 앞을 지날 때마다 우리 부부의 감탄을 자아내곤 하는 멋진 집이 한 채 있는데, 몇 해전 대한민국 건축상을 받은 그 집은 문의의 또 하나의 명물이기도 하다. 그 집 옆으로 잽싸게 커피숍들이 몇 군데 들어섰지만, 딱히 남편과 둘이서 커피숍까지 들어가서 앉아 있고 싶지는 않아서 그 동네 커피 맛은 잘 모르겠다.
건축상을 받은 그 집 뒤로 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비스듬히 경사가 조금 있긴 하지만 거의 평지 걷는 것과 다름없는 산길에는 차 한 대가 넉넉하게 다닐 수 있는 임도가 잘 나있다. 그 임도 위에 갈색 솔가지들이 상수리나무잎들과 뒤엉켜 원래 임도의 색깔이 갈색이라도 되는 듯이 시멘트 도로 위를 덮고 있었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사백 미터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걸어올라 가는데, 강아지 두 마리가 저 앞에서 우리를 보고 몇 마디 짖어댄다. 솔가지들이 굴러다니는 도로 위 옆으로 커다란 비닐하우스들이 보이고 회색 SUV 차량도 한 대 서있었다. 주인이 있는 개들처럼 보였다.
몸집이 작은 시골 강아지 두 마리가 짖던 소리를 금세 멈추고 우리를 향해 경쾌하고 편안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눈매가 순하게 생긴 놈들이었는데 갈색 누렁이가 몸이 조금 더 크고 젖이 부풀어 오른 걸로 보아, 누런 색 속에 흰색 털이 더 많이 섞여있는 작은 강아지의 엄마인 것처럼 보였다.
녀석들이 마치 우리를 마중 나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편과 내 주위를 얼쩡거리는데, 비닐하우스 앞에 가시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세워놓은 곳에 고라니 한 마리가 고개를 울타리 쪽을 향한 채로 앞다리가 철조망에 끼어 죽어있었다. 왼쪽 뒷다리는 사라지고 오른쪽 뒷다리 하나가 맥없이 달려 있는 고라니 몸통의 2/3는 속이 거의 비어있는 채로 벌건 살첨과 뼈가 함께 드러나 있었다.
"에구, 불쌍하기도 하지. 고라니를 누가 와서 먹었을까요?"
철조망에 다리가 끼어 옴짝달싹 못한 채로 죽음을 맞이했을 고라니의 운명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고라니의 숨이 붙어있을 때 다른 생명에게 생살을 뜯어 먹히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죽은 고라니의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 부부가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데, 젖이 출렁거리는 어미 개가 자꾸만 우리 뒤를 따라온다.
"착하지? 이제 그만 니 애기한테 가봐~"
녀석이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저만치에서 오던 걸음을 멈추고 서있는다. 우리는 조금 더 경사진 산길 도로를 따라 산의 중간 높이쯤까지 올라갔다. 겨울 하늘 밑으로 펼쳐진 마을 풍경이 아늑하고 정겹게 내려다보였다. 올라왔던 산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는데, 비닐하우스 근처에 아까 우리를 따라다니던 작은 개 두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 얘들이 안 보이네요~"
"집에 들어갔나 보지."
우리 부부의 짧은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작은 몸집의 흰색 강아지가 나무 옆 흙밭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무와 조금 떨어진 철조망 앞에서 고라니를 뜯어먹고 있는 어미개의 모습이 보였다. 고라니를 뜯어먹고 있던 어미개도 망을 보는 아기 개도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하는 것처럼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아까 어미개가 우리를 따라온 이유가 있었네. 우리가 멀리 가는지 확인하려고 했나 봐."
시골 출신 남편이 개를 좋아하고 개의 교육과 심리에도 나보다 일가견이 있는 게 사실이기에, 나는 어느 정도 남편의 말이 맞을 것도 같았다. 어미개는 우리가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리가 등을 돌리면 다시 고라니의 빈 몸통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아기 개는 그런 어미개의 모습이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살코기를 기다리는 건지, 나무 밑에 앉아 무슨 소리라도 나면 사방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사실 당황한 건 그 개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부부였는 지도 모른다. 순박하고 착한 눈빛을 한 녀석들이 고라니 생식의 범인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녀석들은 마치 부끄러움을 아는 놈들 같았다고 우리 부부는 그런 얘기를 나누며 산길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섰다.
오늘 개는 고라니를 먹고, 우리 부부는 돼지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