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작가

by 도라지

머릿속이 뒤죽박죽 뒤엉킨 채로 늦은 아침에 잠에서 깼다. 감정의 혼탁한 찌꺼기들이 언어의 잔재로 남아 머릿속을 헤집으며 떠다니고, 정리되지 않은 어제 하루가 오늘 아침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나는 어제저녁 이후로 내게 적절한 평화를 누군가에게 갈취당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심리적 상태 위에 지금 나는 던져져 있다. 내 머릿속을 정리해서 각자의 수납공간에 집어넣고, 내 마음에는 다시 평화로움과 특유의 뻔뻔함을 채워놓아야만 한다.


어제 아침 성형외과 문 열기가 바쁘게 전화를 걸어 상담 예약 시간을 잡아놓고, 오후 다섯 시에 성형외과를 방문했다. 해가 바뀌어서 그런지 친구의 눈두덩이는 한층 무겁게 내려앉은 것도 같았다. 지붕 위에 내려앉은 하얀색 눈이 아래로 밀려 내려오듯이, 친구의 눈꺼풀은 자꾸만 아래로 쏠리고 있었다. 친구가 두 눈을 덮어버린 축 늘어진 피부 조직을 조금 잘라내고 쌍꺼풀을 만드는 상안검 수술을 하기로 했다.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낮에 선배한테 식당 이름을 확인해두었던 부속구이집에 도착했다. 후배 녀석 두 명이 큐알코드 기계 앞에서 입장 허가 승낙을 받고 드디어 셋이 앉아 술을 먹었다. 새해 첫 술이며 40일 만의 술이었다. 그 사이 혼자 집에서 와인도 한잔 마신 적이 있었지만, 역시 술다운 술은 여럿이 함께 먹는 술이다.


브런치에 독자로 들어와 있는 후배 두 녀석 중 한 명에게 내 소설에 대한 평을 숙제로 내 준 적이 있었다. 후배 녀석의 말재주가 기똥차서 그 표현이 탁 내 심장에 꽂혔었는데, 지금 내가 기억나는 건 "삼류 소설" 이 단어 하나뿐인 까닭은 무얼까. 나는 분명히 그 후배의 한 줄 비평을 이해했었는데, 그 길지도 않은 문장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후배가 내뱉은 삼류 작가의 표현에 상처를 입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브런치에 들어오면서 내 목표는 일류 작가가 되는 게 아니었다. 죽는 날까지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면, 언어를 조작할 수 있는 힘이 내 육체에 남아있는 날까지 글을 써보겠다는 게 첫 번째며, 대단하지 않아서 오히려 읽기에 부담 없는 우스운 글을 써보자는 게 두 번째였다.


그런 지향점이 있는 작가이기에, 삼류 작가 운운하는 소리 들어도 심란할 것이 없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나는 술집에서 걸어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도착하고도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파트 안에 설치되어 있는 티하우스에 번지는 불빛이 아늑해 보여서, 아무도 없는 티하우스에서 잠시 혼자 앉아 있었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매일 글을 썼고 글 올리는 것을 하루도 빠트린 적이 없는데, 나는 어제 써두었던 글도 올리지 않았다. 다른 아이템도 없이 뻔뻔함만이 유일한 무기인 삼류 작가도 마음이 비뚤어질 때가 있나 보다. 초라한 내 소설이 늙은 오십 대 아줌마보다 더 초라해 보이는 밤이었다.


<오드 아이 11>을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스르르 잠이 들고 잠결에도 내 마음은 글을 올리지 않고 지나간 어제 하루를 갈등하고 있는데, 새벽 2시 11분 현관문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누구세요?"라고 묻는 내 질문에 모니터 속 아저씨가 "배달이요."라고 답을 하고, 뒤이어 큰아들 방문이 열리며 "제가 주문했어요~"라고 부스스한 얼굴로 아들녀석이 말했다. 가뜩이나 머릿속이 복잡한데, 새벽 두 시에 난데없는 배달 소동까지 참 어수선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보니 새벽 두 시에 아들놈이 주문했던 뼈해장국은 먹지도 않은 채 그대로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고, 숙취로 머리가 아프다며 일어난 큰아들이 자기가 왜 뼈해장국을 주문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을 한다.


삼류 작가 엄마는 이제 그깟 해프닝쯤엔 눈도 꿈쩍하지 않고, 시시한 삼류소설을 계속 쓰느냐 마느냐 하는 매우 이성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나의 유일한 장점인 뻔뻔함을 도둑맞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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