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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Feb 03.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1

허공을 가득 채운 색 공기가 하늘과 맞닿아있는 건물들의 꼭대기에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와우산 자락 아래로 해가 떠오른 지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을 것이나, 세상을 통째로 삼켜버릴 것처럼 거대한 대기가 뱉어버린 희뿌연 미세먼지 속에서 무기력한 태양은 제 모습을 구태여 드러내고 싶지 않은 눈치다.


스물세 살에 전역한 이후로 평생을 한복만 입고 사는 박태성이 청진빌딩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주차장과 연결되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 오픈을 하는 <고여사네>가 식당 문을 열어놓은 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박태성이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스마트와치를 들여다보고 오전 아홉 시 삼십 분임을 확인한다.


<고여사네> 여사장 고주연이 문밖으로 지나가는 박태성을 알아보고 뛰쳐나오며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 왔다.


"관장님, 오늘 점심은 저희 집에 오셔서 드세요. 개업날이라서 관장님께 식사 대접해드리고 싶어서요. 꼭 오세요~"


석 달 전쯤 닭갈비집이 문을 닫고 나간 자리에 한달 전 고주연이 계약을 했다. 식당을 했던 자리라서 깨끗하게 내부 색칠만 새로 하고, 고여사는 집기류 세팅을 마친 뒤 바로 오늘 오픈을 하기로 했다. 주메뉴는 아구찜, 대구탕 등 수산 쪽이라서 옆에 붙어있는 <해누리> 삼겹살집이나, 2층의 퓨전 레스토랑 <사과나무>와 겹치는 아이템은 아니다.


서로 나이는 묻지 않았지만, 박태성은 고주연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태성은 이 건물 3층에 세들어 있는 택견 수양관의 관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이 건물의 실제 관리인 격이다. 청진빌딩의 소유주는 청진학원 재단 이사장인 주민국으로, 주민국은 박태성에게 이 건물의 실제적인 관리를 맡기고 있다.


고주연이 임대차 계약 당시 주민국의 변호사 진현기와 박태성이 함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박태성은 고주연이 52세 싱글이라는 것과 30세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의 딸이 함께 식당 일을 할 거라는 사정까지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박태성은 고주연뿐만 아니라, 청진빌딩에 세 들어 있는 모든 가게 주인들의 신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다 알고 있는 셈이었다.


오늘은 금요일, 청진중학교 학생들이 수양관에 오는 날이다. 오전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두 시간의 수련을 한 뒤 학생들을 보내고, 고여사네 가서 식사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박태성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을 션찮게 먹고 나와서 그런지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인다. '아구찜엔 소주가 제격인데 점심이라 아쉽군~' 태성이 저 혼자 입맛을 다셨다.


고주연은 점심 먹으러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돌아서는 박태성의 뒤태를 보며 생각했다.


'저 한복 바지에 들어있는 엉덩이는 어떨까? 옆 가게 사장처럼 애플힙일까? 평생 운동했다고 하니 분명 애플힙이 맞을 거야. 삼겹살집 사장보다 설마 못하진 않겠지..'


그리곤 슬쩍 옆 가게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해누리 삼겹살집은 다른 데처럼 건물 외벽에 크게 간판을 붙이지 않았다. 조금 작은 듯하지만 운치 있게 목재를 사용해서 붓글씨체로 <해누리>라고 멋스럽게 적어놓았다. 삼겹살집 강 사장은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는지 식당 문이 잠겨있었다. 고주연의 귓가에 청량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이내 "끼익~"하고 자전거 브레이크 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찍 나오셨네요, 고여사님~"


청바지를 입은 삼겹살집 강서준이 자전거에서 내리며, 고주연을 향해 싱글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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