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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Feb 04.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2

고주연이 삼겹살집 강사장의 애플힙을 처음 발견한 건, 청진 고등학교 교감에 재직 중인 오빠 고주원의 소개로 한 달 전 이 점포를 보러 왔을 때였다. 그날도 강서준은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그의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강서준은 큰 키는 아니지만 뱃살 하나 없이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며 홀 서빙을 직접 하고 있었다.


십 년 전 사별하고 혼자 사는 고주연은 딸 김서영의 시선이 무서워서, 지난 십 년 동안 드러내 놓고 남자도 못 만나고 남편이 생전에 좋아했던 아구찜 식당을 차려서 그걸로 먹고살고 있다. 십여 년 전 우연히 소식이 닿게 된 초등학교 동창생이 대전에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거기 와서 식당을 해보라고 제안을 하는 통에 칠 년을 대전에서 장사를 했다.


고주연을 닮아 미모가 뛰어났던 딸 김서영은 전문대 졸업도 하기 전에 임신부터 덜컥해서, 벌써 손주가 일곱 살이 되었다. 사위는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다행히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그나마 고주연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다. 서영은 홀로된 엄마 고주연이 연고도 없는 대전에 혼자 가서 장사를 하고 있던 게 안타깝고 못 미더웠는데, 외삼촌 학교 근처 건물에 빈 점포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엄마를 구슬려 청주로 데려왔다. 그리고  서영이 엄마 식당 일을 거들기로 했다. 서영은 고주연에게 따져 묻지는 않았지만, 대전에서 엄마가 식당을 차렸던 건물 주인 남자가 엄마와 동창 관계를 넘어 남녀관계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2월 초순이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겨울 날씨치고는 제법 온화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학교는 아직 방학중이라, 청진 빌딩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진 고등학교의 텅 빈 운동장이 겨울나무처럼 쓸쓸해 보였다. 청진 고등학교의 운동장과 바로 맞닿아 있는 청진 대학교의 오르막길을 몇몇의 사람들이 손에 책을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청진중학교 학생들의 수련을 마치고 박태성이 창밖을 내다보다가 고여사네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건물엔 온통 주민국의 사람들이군. 주민국 공화국~ 대단한 이야.'


박태성은 십 년 전 청진대학교 본관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던 때를 떠올려보았다. 청진 학원 이사장의 퇴임과 학교 개혁을 주동하던 소수 교수들과 학생회 편을 들었던 민예총의 파견단 자격으로 박태성도 그 천막에서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냈었다.


이후로 박태성은 주민국과 친분을 쌓고 해마다 열리는 세계무술대회와 택견 연합회 지원을 얻어냈다. 주민국은  년 전 박태성이 이혼할 무렵 청진빌딩 3층에 임대료 없이 택견 수양관을 차리게 하고, 청진 학원 재단의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의 정신과 신체의 수련을 담당하는 소임을 맡겼다. 이를테면 박태성은 청진 학원에 소속된 사람으로 청진 수양관의 관장 칭호로 불리고 있으며, 청진 재단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고여사네> 식당 앞에는 청진 학원 이사장 주민국의 이름이 박힌 화분과 해누리 강서준과 택견 박태성, 사과나무 진현주, 청진 일보 대표이사 주성훈 등이 보낸 화분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박태성이 <고여사네>로 들어서는데, 2층 <사과나무>의 진현주와 4층 <꾸에로> 가죽공방의 이은정의 얼굴이 보였다. 곧이어 6층 카페 <말루스>의 여사장 신재희가 작은 화분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주민국의 공화국엔 젊은 여자든 나이 든 여자든 다들 하나같이 한 미모 하는 여자들만 바글거렸다. 강서준은 점심시간이라 오지를 못한 눈치였다.


이 건물의 세입자들이 한 명씩 고주연의 식당으로 들어서며 축하 인사를 건네 올 때, 고주연은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주연의 또래로 보이는 2층 퓨전 레스토랑의 여사장 진현주를 며칠 전 가게 오픈 준비하다가 봤을 때도, 고주연과 딸 김서영은 벌써부터 음식 경쟁이 아니라 미모 경쟁으로 눈에 불꽃이 튀었었다.


6층 카페 여사장 신재희의 외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4층 가죽공방 주인 이은정은 김서영을 제외하고 가장 젊어 보이는 데다 우아한 매력까지 지니고 있는 여자였다. 고주연과 김서영은 갑자기 전투력이 솟구치며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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