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부럴 심포지엄

by 도라지

충청도엔 아직 꽃도 피지 않았는데, 늙은 아줌마는 나보다 더 나이 든 선배님들을 만나러 천안엘 갔다. A선배는 82학번, B선배는 83학번이다. 어제는 나랑 같은 88학번의 여자 친구가 한 명 더 합석을 해서 여자 둘, 남자 둘 합해서 사람 네 명이 함께 식사를 하며 미처 피지 못한 봄꽃 대신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가 이 나이 먹어 피울 수 있는 꽃이 사랑꽃 아니고 이야기꽃이라 할지라도, 어제저녁 피어난 이야기꽃은 사랑꽃 부럽지 않은 유쾌하고 화사한 색깔의 꽃이었음에 틀림없다. 모두들 어딘가 구금되어 있다가 풀려 나온 사람들처럼 실컷 웃고 돌아갔으니, 어제저녁 이야기꽃이 활짝 피었다는 것은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사실이다.


알쓸신잡 수준의 격조 있는 주제와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자리는 아니어도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교육계의 각기 다른 영역에서 나랏밥을 먹는 세 명의 공직자와 남편 밥을 먹는 한 명의 아줌마가 모여 앉아 나누었던 어제저녁 이야기는, 60년대에 태어난 중년들의 청춘과 현재를 오고 가며 세 시간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B선배가 며칠 전 유튜브에서 발견했다는 어느 영상엔,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 시절 속의 청주 무심천과 서문동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드라마의 원작자가 청주 출신의 김수현 작가였기 때문에 청주 무심천과 서문동 일대를 중심으로 배경이 등장하고 있었던 듯싶다.


청춘은 흘러가고 이제 주름진 얼굴만이 살아온 삶의 여정을 대변하듯 남아있는 오십 대의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 속에서 대학 시절의 얼굴을 애써 더듬어보며 아련한 이십 대의 청춘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 명의 공직자는, 우리 사회에서 남녀 불문하지 않고 시험 성적에 따라 공직자로 선발되는 '절대 평등'의 원칙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에 관해 다들 고개를 갸웃하며 명쾌하게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남녀가 똑같은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는 공정한 정책이라는 데 이견은 없으나, 교육계뿐만 아니라 검찰과 경찰 조직에서조차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발생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공직자들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옛날 여선생이 드물었던 시절에는 '여교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여성들의 권익을 보장하려고 애썼던 반면에, 임용고시를 통과하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진 요즘 교육 현장에서는 '남교사회'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지구대에는 지구대의 특성상 취객을 상대로 적절하게 제압하고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한데, 여자 경찰이 취객 앞에 등장하게 되면 취객은 경찰을 여성으로 보고 볼썽사나운 태도를 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난동까지 부린다고 한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경찰들이, 여성 경찰이 파트너가 되는 것을 반길 수 없게 되는 이유의 하나인 것처럼 들렸다.


남편 밥을 먹고사는 늙은 아줌마의 귀에도, 그들의 고충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주로 여성의 입장에서 거론되는 성인지 감수성, 성인지 예산에 대한 날카로운 기준을 들이대는 것만큼이나, 절대 평등을 통한 성적순 시험 선발제만이 과연 국민들의 평등한 삶에 기여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의 온갖 문제를 오직 '절대 평등'의 기준으로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직업군별로 필요한 인력에 적절하게 '성인지 평등'의 제도를 다시 연구해보는 것도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숙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소주는 분명히 알코올이며 결코 액체밥이 될 수 없다는 엄격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 A선배는 대학 시절부터 저녁엔 주로 '액체밥'을 먹고살았다. 대학 시절에는 주로 막걸리가 그의 액체밥이었다면, 요즘엔 맥주가 그의 액체밥이란다. 호사스러운 안주는 입에 대지도 않고 액체밥만 홀짝홀짝 먹는 사이에도, A선배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갔다.


천안에 오기 전에 분당 장례식장에 다녀온 나는 검은색 옷을 입고 선배님 옆에 앉아서, 과묵한 남자처럼 술잔을 들이키며 한 마디씩 궁금한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절대 평등의 원칙 아래 입사한 이삼십 대 직원들은 직장 선배 앞에서도 평등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게 요즘 공직 사회의 씁쓸한 현실이기도 한 것 같았다. 가끔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 '띠부랄~'하고 속으로 뱉어버리곤 한다는 A선배를 따라, 철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이해력을 알아보기 위해 가끔 영어 문제를 던지곤 하는 철학 선생이, 소맥이 담긴 술잔을 들고 원어민스러운 발음으로 "Everybody says, 띠부럴~"을 외쳤다.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심포시아'에서 옮겨진 라틴어 '심포지엄'은 플라톤의 그 유명한 책의 제목처럼 "향연"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요즘에야 공중 토론의 한 형식으로서 통용되는 단어이지만, 소크라테스 시절에는 문자 그대로 술과 대화가 있는 연회였다.


다음번 우리들의 심포지엄에 관한 약속을 정할 때, 늙은 초보 작가는 네 명의 휴대폰에 "띠부럴"이라고 적어두는 게 어떻겠느냐 제안을 했지만 아무도 그렇게 적은 사람은 없었다. 띠부럴~, 좋기만 하구만 왜들 적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마리아인지 줄리아인지 정체도 불분명한 여성을 퍼스트레이디라고 불러야 하는 현실이 정말 띠부럴같기만 한데, 아홉 시 오십 분 막차를 타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온 늙은 엄마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응급실 이브닝 근무를 마치고 막 퇴근해있던 큰아들이 김치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다.


엄마가 끓여준 라면이 맛있다고 넉살을 부리는 아들의 거짓말에, 늙은 엄마는 코트만 벗고 주방에 들어가 신김치를 한 움큼 넣은 라면을 맛있게 끓여 주었다. 늙은 엄마 부려먹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띠부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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