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이 머니

by 도라지

살아온 날들이 내 나이쯤 되면, 최선을 다하는 삶보다 조금 부족한 듯 하지만 평안한 삶을 지향하게 된다. 악착같이 그 일에 매달려 끝장을 보고야 말았던 젊은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어쩔 수 없다. 매사에 끝장을 보듯 완벽하게 일 처리하다 보면, 세월이 내려앉아버린 내 몸이 버티질 못하게 되니 말이다.


이렇게 변해버린 내게 여전히 남아있는 깐깐한 습관이 하나 있다. 마트에 가면 100g당 가격을 비교해서 물건을 고르고, 온라인 쇼핑을 할 때면 이십 대 아들들보다 더 저렴한 사이트를 찾아내는가 하면, 온오프 망라하고 좋은 물건을 기가 막히게 싸게 구입하는 것이다.


이 또한 내가 버리지 못한 욕심 가운데 하나일 터인데, 나는 아직 그걸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가격 비교를 더 할 것 같다. 언젠가는 그런 가격 비교조차 버겁고 귀찮아져서, 가격 비교 계산을 하지 못할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런 습관을 통해 제법 큰돈이 모아지는 것도 아니다. 몇 백 원, 몇 천 원 아끼고 남들보다 조금 더 싸게 샀다고, 경제관념이 남다르다거나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냥 혼자서만 만족하는 재미에 불과하다.


작년 가을, 새언니의 소개로 오베이라는 리서치 앱을 설치했다. 설문에 응답해 준 대가로 100원, 50원, 어떤 때는 2천 원의 수익을 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리서치의 특성상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할 경우, 거금 3만원 혹은 5만원의 수고료가 책정되는 경우도 있다. 현재는 코로나 시국이라서 화상토론으로 대체되고 있다.


남들은 주식을 통해 몇 백, 몇 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얘기하는 마당에, 고깟 백 원, 이백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차마 어디 가서 말도 못 꺼낸다. 작년 10월부터 시작해서 이제껏 오베이로 3만원 벌었다. 읽기를 좋아하고 게다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활자를 읽고 문자를 해독하는 속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리서치 조사에서도 빛의 속도로 응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주식은 나 같은 쫄보에겐 침범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삼십 대 초반에 무턱대고 욕심에 눈이 멀어 공부도 없이 덤볐다가, 내 딴엔 엄청 큰돈을 몽땅 잃고 하산한 경력이 있다. 그때는 심장이 지금처럼 아주 고장 나지 않았을 때인데도, 빨간불 파란불에 내 심장은 늘 조마조마했었다. 결국 거기서 얻은 지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그나마 건강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란 것이었다.


돈도 사랑도 다 살아 있을 적에 해당되는 말들이다. 죽으면 아무 소용없다. 결국 난 살 길을 택하기로 했다. 내가 즐거운 일을 하는 거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시작한 것이 철학 공부였다.


사람마다 적성은 따로 있다. 주식이 적성에 맞는 사람은 큰돈을 벌 가능성이 있고, 나처럼 오베이가 적성에 맞는 사람은 결코 큰돈을 벌 가능성은 없다. 대신 큰돈을 다시 잃어버릴 가능성도 희박해진다.


삶에 대한 열망과 돈에 대한 열망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현실에서, '자본=행복한 삶'이라는 공식은 마치 지구에서 봤을 때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사실보다 더 명확한 진리로 고착화된 느낌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열망을 돈에 대한 열망으로 치환할 때, 그에게 진짜 행복이란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진짜 행복은 자연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는 것들에서 더 많이 비롯되기에 그러하다. 우리를 바닷가까지 데려가는 것은 자동차와 연료이지만, 푸른 바다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들은 오롯이 바다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 공부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과대나 미생물, 바이오 같은 생명과학 공부처럼 사업으로 연결될 경우 대박의 기회가 있는 학문도 아니다. 인문학은 딱 오베이 머니 같은 학문이다.


공부와 인내심이 필요한 주식과는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남편은 로또의 한방을 기대하며 로또를 사러 간다. 나는 그 사이 남편이 내린 차 안에 앉아, 오베이에서 날라 온 100원짜리 설문조사를 얼른 마친다.


(2021년 9월 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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