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하다, 구미호상이다. 그녀의 얼굴을 티브이에서 보자마자 퍼뜩 든 생각이다. 저런 상을 하고 있는 여인과 살을 섞고 사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여우의 환골탈태를 위해 자기의 간도 빼서 바치는 진정한 사랑이거나, 서로를 이용하여 세상을 속이고 출세욕을 채우려는 비겁한 거래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전설의 고향"에서 그리 배웠던 것 같다. 자고로 옛날 조상님들의 말씀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요즘 내년 대선을 앞두고 티브이에선 정치꾼들의 이야기로 온통 난리법석이다. 호명되는 이름들은 그리 적은 수가 아님에도, 딱 저 사람이다 싶은 인물은 아직 없다. 일하는 방식이 맘에 드는 사람은 딱 한 사람 있지만, 그 또한 숨길 게 있는 거 같아 그다지 안심이 안된다. 그래도 저 구미호상을 한 여인의 남편보다야 덜 미심쩍은 건 분명하다.
자신과 가족이 저지른 일을 숨기고 덮으려 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행보를 걷게 되는지, 한국 드라마는 족집게 강사처럼 정확하게 예를 들어 보여준다. 우리나라 드라마 참 대단한 면이 많다.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는 데모스의 정치적 평등성을,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아무나"는 지성인이라고 뻗대는 우월주의 지향자들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 없는 노동자들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논리는 "지적인 평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정당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둘 때 짚어보아야 하는 지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는 그야말로 "아무나"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랑시에르적 의미의 "아무나"가 아닌 그냥 "아무나"다. 몇 해전 대선 때마다 "내 눈을 바라봐"했던 사기캐 아저씨나, 공직자 직업력을 무기 삼아 무턱대고 덤벼드는 아저씨나 크게 다를 바도 없어 보인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서도 우리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저들만 뭐라 한다. 저런 무리들이 버젓이 활개 치고 다니도록 길을 내어준 우리들의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우리들이 더 무섭다. 자기 집에 저런 구미호상 여자가 며느리 선을 보이면, 집안 말아먹을 일 있냐며 펄쩍 뛸 텐데, 한 나라의 어머니를 뽑는 일인데도 다들 여우에 홀린 건지 펄쩍 뛰지는 않고 있다. 자식 때문에 뭘 위조했다고 어떤 집안을 폭발시킬 때와는 너무 다르다.
퍼스트레이디가 왜 퍼스트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첫 번째 여자 사람 아닌가? 나는 도시락 싸들고 반대한다. 제발 우리나라도 정직하고 멋진 인재들 좀 길러내자~
정치꾼의 자질을 어떠한 기준에서 판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기준이 되는 가치관을 함께 형성하고 정립하는 것이다. 미인박명 아니고 귀인 박명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를, 귀인 박명으로 몰고 간 우리들의 얄팍한 정의감을 의심해볼 때가 되었다.
더 크고 귀한 도덕 따로 있고 더 작고 상관없는 도덕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만, 그의 옷자락이 슬며시 쓸고 지나간 먼지를 공장용 대형 청소기로 제거해야 한다는 폭력적인 논리를 진짜 정의감으로 착각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2021년 7월 16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