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영화, <우리, 둘>에 대한 단상에 붙여)
가끔 아무런 수고도 없이 우연히 얻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어떤 날엔 사람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인터넷에서 뜻밖에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는가 하면, 어느 순간엔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서 일종의 깨달음 같은 것이 우연히 내 속에 들어오기도 한다.
요즘 더위에 지친 나머지 거실 바닥에 깔려있는 요가 매트에 누워 뒹굴거리며, 드라마 <동백꽃필 무렵> 재방송을 티브이로 열렬히 시청 중이다. 티브이로도 모자라 가끔 휴대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동백이와 용식이(극중 인물들)를 찾아볼 때가 있는데, 어느 날엔가는 동백이를 따라 흘러 흘러가다가 늙은 두 연인을 다룬 퀴어 영화가 한눈에 번쩍 들어왔다.
나의 심장은 영상의 한 컷만 봐도 본능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별한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청주에 상영관이 있는지부터 우선 찾고, 국내 개봉 날짜와 요일별 상영 시간을 알아본다. 성인이 된 지 오래된 두 아들놈의 밥때를 피해서 예매를 하고, 나는 정작 점심도 굶은 채로 영화관엘 혼자 들어갔다. 나를 포함하여 네 명의 여자가 각각 한 자리씩 띄엄띄엄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영화는 양갈래로 머리를 땋은 소녀가 울창한 나무에 기대어 두 눈을 손등으로 가리고 숨바꼭질을 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잠시 후 장면이 바뀌어, 오래되었지만 아늑하고 다정해 보이는 방 안에 앉아있는 늙은 여자 마도의 모습이 화면에 가득 찬다. 소녀는 늙었지만 여전히 섬세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그런 마도의 옆에는 진취적이고 열정적이고 건강해 보이는 또 다른 늙은 여인 니나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한 아파트 건물의 같은 층에 살면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남들은 모르는 연인 관계로 살고 있다. 니나가 여행사 가이드 일을 할 때 로마에서 마도랑 첫 만남이 이루어진 뒤, 두 사람은 근 이십 년 동안 연인으로 지내는 중이다. 니나의 고향인 독일 보다 퀴어에 관한 인식적 접근에서 비교적 호의적인 프랑스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이 둘의 사랑은 타인들에게 적대시되거나 혐오의 대상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니나와는 달리 사별한 남편과 출가한 두 자녀를 둔 마도의 입장은 선뜻 커밍아웃을 발표하기가 쉽지 않다.
마도는 생일날 자녀들 앞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니나와 둘이서 로마로 떠나기로 했지만,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처분하려고 내놓았던 집마저 팔지 않기로 마음을 돌리게 된다. 마도에게 화가 난 니나는 공격적인 말들을 퍼붓게 되고, 마도는 충격으로 쓰러져 뇌졸중으로 말까지 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니나는 필사적으로 마도의 곁에서 그녀를 지키려고 하지만, 마도의 자녀들과 간병인이라는 구조 속에서 니나는 철저하게 남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마도를 찾으려는 니나의 노력은 간병인과의 거래마저 불사하게 되고, 결국 간병인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지만 실직을 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아침에 엄마 집을 방문한 마도의 딸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발각이 되고, 마도는 자녀들의 의지대로 결국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니나가 마도를 찾으러 집을 비운 사이, 간병인과 그녀의 아들은 니나의 집을 습격하여 니나와 마도의 로마 여행자금을 도둑질한다. 니나는 병동에 갇혀있는 마도를 구출해서 집으로 데려오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여행자금을 도둑맞은 니나의 집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병원에서 뒤따라온 마도의 딸은 사정없이 니나의 현관문을 두드리고, 사방으로 물건들이 나뒹구는 니나의 집 한 켠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품에 안겨 춤을 추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종래의 퀴어 영화들이 주로 어린 소년 소녀이거나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반면에, 영화 <우리, 둘>은 늙은 여성 커플의 사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신선하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찐득하지 않고 서늘하게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서 에로스가 지향하는 것은 이성애냐 동성애냐의 구별 지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사랑을 통해 누구나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지식을 갖지 못했어도, 돈이 많지 않아도, 권력이 없어도, 젊은이가 아니어도 누구나 사랑은 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 예수의 거룩한 보혈로서 사후 천국에 이르는 구원이 아니라, 내 영혼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그런 사랑을 통해서 고단한 삶으로부터 현재의 나를 구원하는 것이다.
절정에 도달했던 여름이 며칠 전부터 밤이면 가을을 닮은 풀벌레 소리를 불러낸다. 고단한 삶과 한여름의 무더위로부터 잠시나마 나를 구원해 준 영화 <우리, 둘>이 이 여름이 지나도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온전히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다.
(2021년 8월 11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