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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May 09. 2022

(소설) 아담과 애플 20

9월에 나부끼는 바람 속에도 태양은 여전히 건재했다. 은정은 오송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성훈은 세일링에 앞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고 먼저 부산에 있었다.


수영만 요트 경기장엔 열을 지어 정박해있는 배들로 그득했다. 성훈은 이미 출항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은정이 성훈의 요트에 올라타자, 성훈의 옆으로 낯선 남자 두 명이 은정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모자를 쓴 남자가 그의 풍만한 배만큼이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안녕하세요, 은정씨~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배의 닥터 김찬우라고 합니다."


그러자 김찬우 옆에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를 가진 남자가 두 손을 내밀며 은정의 가방을 낚아채듯 집어 들었다.


"이 친구는 손정환이라고 합니다. 등산가이면서 작가를 하는 놈이죠. 이 놈을 소개할 땐 반드시 등산가라는 타이틀을 먼저 넣어야 해요. 제법 알려진 프로 작가가, 아마추어 등산가이면서도 작가라는 타이틀 앞에 등산가라는 걸 먼저 넣어주기를 바라는 속마음은 뭘까요? 작가들의 속은 알 수가 없어요."


김찬우는 연신 싱글거리며 막 전역한 남학생처럼 들떠서 손정환을 소개했다. 고요한 바다같이 낮은 목소리로 손정환이 은정에게 인사를 했다. 성훈의 눈동자는 친구들과 모험을 떠나는 소년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성훈의 눈동자를 빛나게 하는 친구들의 눈동자 속에도 푸른 바다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은정씨, 이 녀석들은 제 고등학교 친구들이에요."


성훈이 친구들에 대해 언급하기가 무섭게, 김찬우가 다시 말을 채갔다.


"성훈이가 여자를 소개한 건 은정씨가 처음이에요. 이 녀석 결혼할 때도 신부를 결혼식장에서 처음 봤다니까요."


그러자 손정환이 묵직한 기침을  낮게 뱉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전부 인생 아니겠어요? 돌아가신 분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온다면, 그것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시다. 일부러 빼거나 주워 담을 것도 없이요. 괜찮겠지, 성훈아?"


주성훈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배를 지키고 살아 돌아온 자의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대꾸했다.


"그럼, 다 내 인생인 걸~ 앞으로 항해하는 게 중요하지. 죽은 사람 얘기가 나올 상황이면 나와야지.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잖아."


"그런데 진아는 왜 안 오는 거야? 저희 학교가 남녀공학이었거든요. 은정씨 오신다길래, 제가 여성 멤버를 한 명 긴급 섭외했습니다. "


김찬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늘씬한 여자가 성훈의 요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얘들아, 나 왔어. 찬우야, 내 손 좀 잡아줘~ 정환아, 이 가방 좀 받아줄래?"


여자가 김찬우의 오른손을 잡고 요트 위로 올라왔다. 여자는 성훈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은정에게로 시선을 돌리다가 다시 성훈을 흘깃 보았다.


"아름다운 이 분은 누구실까?"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검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질문을 던지자 김찬우가 다시 나섰다.


"은정씨는 성훈이 조르바호에 특별하게 모신 손님이야. 은정씨, 이 친구는 권진아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저는 팝아트 작가 권진아라고 해요~"


권진아는 어깨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끈 원피스 옆으로 기다란 팔을 내밀었다. 하얀색 반팔 티셔츠  차림을 한 은정이 권진아의 손을 잡았을 때, 아기 손처럼 보드라운 여자의 감촉에 은정은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가죽 공예 일을 배운 뒤로, 은정의 두 손은 바다 사내들만큼이나 거칠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은정이에요. 가죽공예 일을 하고 있어요. 손이 정말 예쁘고 부드러우시네요~"


"어머, 그런가요? 제가 손만 예쁜 게 아닌데~ 칭찬 감사해요."


두 여자의 인사가 끝나고, 조르바호의 선장 주성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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