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이미 기울었지만 아직 사물을 식별할 만큼의 낮은 채도의 밝음이 남아 있었다. 오늘로서 청주대학교 75주년 기념 우암 대동제 이틀째다. 평소에도 러시 아워 때라서 막히는 구간인데, 오늘은 대동제 공연을 보기 위해 움직이는 차들의 행렬로 학교 앞 도로 위는 사방이 꽉 막혔다. 그 와중에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자의 정당 색깔로 치장한 선거 유세차들이 경비 초소처럼 학교 정문 앞을 드러내 놓고 가로막았다.
이 동네를 구석구석 알고 있는 우리 부부는 청주대학교 옆에 주차를 하고 축제가 열리는 대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젯밤 '제시'의 공연에도 3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오늘 밤엔 '싸이'가 청주대 공연에 온다. 월드스타 '싸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3인조 힙합 그룹 '호미들'을 보려고 오는 학생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초대가수들의 공연에 앞서 청주대학교 학생들의 장기자랑과 시상식이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우리가 운동장에 도착할 무렵에는 현직 가수들 뺨치는 쟁쟁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의 무대가 넓은 운동장을 이미 뜨거운 열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원형의 스타디움에는 수천 명의 관중들이 관객석에 들어앉아 있었고, 무대 앞에 쳐놓은 가드라인에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학생들이 반원을 그리며 촘촘하게 붙어 서있는 게 보였다. 행사를 주최한 총학생회 측에선 가드라인을 사수하려고 연신 제지를 하고, 틈만 나면 가드라인을 무단으로 이탈하여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학생들의 은근한 신경전이 공연장의 열기만큼이나 팽팽했다.
널찍한 계단 형식으로 이루어진 스타디움의 관객석에 젊은 친구들이 펼쳐놓은 치킨과 맥주의 냄새가, 우암산에서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싱그러운 수풀의 향기와 뒤섞여 오월의 저녁 공기를 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젊고 싱싱한 육체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려는 여고생들이 현란한 화장술과 타이트한 옷차림으로 그들의 신분을 위장하고 있지만, 화장술로도 감출 수 없는 어린 젊음들이 점차 내려앉는 어둠과 몰려드는 군중 속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최대한 무대 앞으로 가까이 전진해보자고 다짐을 한 오십 대 부부가 가드라인 오십 미터 근방에서 스탠딩 자세로 버티고 있은 지 두 시간이 흘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싫어서 약간의 간격을 두고 서있던 우리 부부 앞으로 계속해서 끼어드는 학생들과 뒤에서 푸시하는 젊은이들 속에 갇힌 우리는, 두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린 채로 팔짱을 끼고 서서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한 치의 틈도 없는 군중의 감옥, 어찌 보면 이것은 축제가 아니라 고문에 가까웠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몰려든 군중들 틈에서 서로의 신체가 부딪히고 맞닿는 매우 절묘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젊은이들은 눈으로 무대를 감상하지 않고 높이 추켜올린 휴대폰으로 무대를 찍으며 그 작은 폰으로 무대를 관람하였다. 누구의 키가 더 커서 무대를 조금 더 수월하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누구의 팔이 더 길어서 좋은 각도로 영상을 촬영하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가까이에서 무대를 더 잘 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간격이 없이 사람들의 신체가 극도로 밀접하게 붙어있는 상태에선 어느 누구도 무대를 제대로 관람할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잊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린 두 명의 남녀 커플이 내 앞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휴대폰 촬영을 하였다. 키가 크지도 않고 체격이 발달하지도 않아서 다소 말라 보이는 남자애는, 여자애의 휴대폰까지 조절을 해가며 여자 친구가 휴대폰을 통해서나마 무대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키가 작은 여학생이 키가 큰 두 명의 여자 친구 뒤에 매달려서 친구들이 들어 올린 휴대폰 영상을 통해 무대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이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그들의 뒤에서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을 때였다.
여러 명의 남자애들이 사람들을 헤치며 우르르 밀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대 옆으로 설치되어 있는 의무실 바로 앞쪽이었던 것 같다. 키가 크고 힘이 세 보이는 남자애들이 "응급실 갈게요~"라고 소리를 치며 군중들 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운동선수들로 보이는 녀석들의 조직력에 기가 눌린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몸을 부딪히며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녀석들이 바로 내 옆까지 뚫고 들어와 바짝 붙었을 때, 나는 낮고 굵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물었다.
"응급실 가는 겁니까, 의무실 가는 겁니까?"
군대를 다녀온 적도 없는 내 입에서 현역 군인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화가 나거나 위급할 때면 무심결에 이런 화법을 쓰곤 한다. 운동복에 점퍼를 걸친 한 녀석이 늙은 아줌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급실이요. 아니, 의무실요."
녀석의 도전적인 눈빛에 늙은 아줌마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다친 사람 있으면 업고 가야지, 이렇게 갑니까? 의무실 가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다 똑같은 상황인데, 질서를 지킵시다. 이러다 정말 사람들 다칩니다."
녀석이 알아 들었는지 '죄송합니다'라고 대답을 하며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멈추었다. 저쪽에선 어느새 의무실 쪽을 향해 돌진했던 녀석들이 대학교 총학생회 스태프들에게 혼쭐이 나고 있었다. 무대 앞에서 불기둥이 검은 밤하늘로 솟아오르고, 물분수가 까만 허공에서 하얗게 흩어지며 관중들 앞으로 뿜어졌다.
호미들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으로 싸이가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열광하는 관중들의 안전을 위해 싸이가 몇 마디 당부를 하고 쇼는 진행되었다. 젊은이들이 뛰기 시작하자, 남편은 늙어가는 마누라 손을 이끌고 관중들 틈을 빠져나와 운동장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대와 멀어질수록 사람들의 간격도 여유로워졌다. 우리처럼 나이 지긋한 커플들과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도 보였다. 우리는 함성을 지르는 관중들 속에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축제를 함께 즐겼다.
층층이 경사진 원형의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노란 불빛의 휴대폰들이 수억 개의 별빛들이 내려앉은 것처럼 장관을 이루었다.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인파의 무리가 두려워진 우리는 아직 무대에 서있는 싸이를 뒤로 하고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가파른 경사길을 내려갈 때, 청주대학교에 올라오기 전에 집에서 붕대를 감고 온 왼쪽 발목에서 경미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까만 밤하늘엔 반짝이는 별빛들이 있고, 내 마음속엔 수만 개의 젊음의 별빛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