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

by 도라지

한이 깊은 바다에도 오월의 햇살은 눈부셨다. 노란색 리본을 가슴에 새기고 서있는 붉은색 등대를 돌아 나오고 있을 때, 팽목항의 선착장에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의 입구를 이미 아래로 내려뜨린 배가 부두에 닿았을 때, 배 안에 싣고 온 승용차와 트럭들이 차례로 육지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선실에 있던 사람들이 내리고 배가 제 몸 밖으로 차들을 다 토해내었을 때, 부둣가에 짐을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각자의 짐을 들고 배에 올라탔다. 항구 주차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던 차들이 줄을 서서 그 배의 커다란 입 속으로 들어가고, 큰 배는 다시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싣고 팽목항을 떠나갔다.


팽목항에는 널찍한 주차장 앞으로 고작 세 채의 낡은 컨테이너가 듬성듬성 서 있을 뿐이었다. 단원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세월호 팽목 기억관>에는 작은 분향소가 초라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기억하는 이의 마음을 더 슬프게 하기 위해서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아닐진대, 온전히 녹슨 배처럼 벗겨지고 찢어지고 부서진 컨테이너 공간은 마치 정의와 진실이 녹슬어 버린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의 어두운 자화상 같았다.


외관을 파란 바다색으로 색칠한 낡은 컨테이너의 한쪽에 "세월호 참사 8년"이라는 글씨가 작게 박혀있는 노란색 천이 매달려 있었다. <팽목 강당>이라고 뒤편 아래 작게 쓰여 있는 파란색 컨테이너 앞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한 대 보였다. 실외기의 뒷면과 컨테이너의 위쪽을 끈으로 연결한 노란색 천에는 고래 등에 올라탄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바닷속에 사라져 간 아이들의 영혼이 신비한 고래를 타고 천진하게 바닷속을 누비며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마음이 느껴졌지만, 그림을 매달고 서있는 낡은 컨테이너가 우리들의 누추한 진실처럼 서글펐다.


기억관 컨테이너 맞은편으로 <세월호 팽목 성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또 하나의 컨테이너가 주황색 지붕을 이고 서있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설치한 팽목 성당의 주황색 지붕마저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있었다. 서러운 진도의 바다색을 닮은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팽목 성당 컨테이너의 주황색 지붕이 오월의 태양 아래에서 유난히 고독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팔 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는데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팽목항의 사정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세 개의 컨테이너를 지나 선착장 가까이에 조금 깔끔한 외관을 하고 있는 <진도항 임시 여객선 터미널>에는, 진도와 제주를 90분의 기적으로 잇는 초쾌속카페리의 취항을 축하하는 <산타모니카 취항식>이라고 적힌 신상 현수막이 산뜻하게 걸려있었다. 열흘 전에 끝난 취항식이지만, 여객선터미널 측에선 산타모니카를 홍보할 생각으로 계속 걸어두고 있는 것 같았다.


제주도를 들어가는 관광객들이 아니라 진도에서 추자도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행색을 한 주민들이 대부분인 진도 팽목항 선착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육지와 섬을 오고 가며 삶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진도에 여행객으로 온 나와 같은 사람들만 더러 붉은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 길을 따라 걸으며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방파제 양옆으로 세워놓은 노란색 깃발들만 무심하게도 나부꼈다.


팽목항을 뒤로하고 쏠비치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먹먹해진 남편과 나는 별다른 말을 나누지 못했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바다 위로 붉은 달이 떠올랐다. 수평선 아래로 시뻘건 태양이 모습을 감춘 지 채 한 시간도 흐르지 않은 시각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진도 쏠비치로 돌아왔을 때, 외국의 성곽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쏠비치의 웅장한 밤 풍경을 배경으로 짙붉은 달빛이 바다 위를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간조 때 바닷길이 열리듯 보이는 것처럼, 검은 바다 위로 생생한 달빛이 또 하나의 길을 만들려는 듯이 달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붉은색의 비단처럼 드리워진 달그림자를 따라가다 보니, 까만 밤에 보이지도 않는 수평선이 저기쯤일 거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 달빛조차 검은 바다 위로 길을 만드는데, 우리는 세월호 아이들과 가족들의 길을 왜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철썩철썩, 고요한 밤바다에서 바닷물이 해변가 바위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새까만 밤바다 위에 걸려있는 보름달이 호텔방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노랗게 부서져 들어왔다. 달빛을 받으며 오후에 다녀온 팽목항에서 가져온 노란색 리본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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