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표와 두 바퀴

by 도라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동안 발생하는 커다란 변화를 기준으로 하여, 일정한 단계로 구분하는 과정을 우리는 '생애 주기'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세월을 생애주기라는 말로써 표현하듯이, 동물들에게도 각 종별로 삶의 주기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주기란 것도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종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과학자들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인식할 수 있다.


하나의 개체가 성적으로 성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그 개체가 다 자란 후 얼마나 생존하는지 등이 정해져 있다고 가정할 때, 과학자들은 각 종별로 "개체의 삶의 시간표"를 표식화해두었다. 자연 생태계에서 이 시간표가 바뀌는 경우는 극히 드물게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를 일러 우리는 "돌연변이"라고 부른다.


포식자가 많은 호수에 사는 물고기의 경우 삶의 시간표가 빨리 돌아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단다. 삶의 시간표가 늦게 돌아가는 것보다 후손 확보에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빨리 성장하고 빨리 교미해 가급적 많은 후손을 얻어 번식시킴으로써 후손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본능적인 계산이다.


생존의 위협과 안정이라는 명제는 개체에게 가장 큰 이슈가 된다. 가난한 집보다 부잣집에서 다툼과 분쟁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을 봐도 그렇다. 가난한 집에선 구성원들이 비교적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가난이라는 강을 필사적으로 건너가려고 의기투합한다. 냉혹한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가족들이 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 전력투구하여 힘을 합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그 강을 무사히 건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내 것에 대한 욕망을 가진 인간들이 서로 뒤엉켜서 살아가야만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소외되거나 손실을 보는 사람은 상대에게 끝없이 다 내어준 쪽이다. 내 몸을 위하고 내 것을 더 많이 챙기려 한 쪽이 건강이든 돈이든 다 갖고 있다. 가족 집단에도 포식자는 늘 있기 마련인데, 구성원들의 관계성과 상관없이 포식자 마인드를 가지고 태어나는 개체는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포식자가 난무하는 자본주의 호수에서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질병'에 가까운 갱년기 신체적 변화는 기운이 상승하고 수명이 길어지는 긍정적인 돌연변이 진화가 아니라, 기운이 하강하고 병증들이 출몰하는 부정적인 돌연변이 증상에 근접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요즘 갱년기를 겪으며, 몸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단 살아온 내 삶의 시간들이 허망하게 느껴진다. 너무 희생하고 절약하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모두 부질없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몸은 아프고 기운도 없어서 금방이라도 빈 껍데기가 풀썩 주저앉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저 남자도 평생을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애쓴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매일 마스크팩 붙이고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며 키득거리는 남편이 너무너무 얄밉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얄미운 마음은 얄미운대로 또 하나의 바퀴가 내 마음에서 굴러간다.


호수를 누비는 포식자가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남은 내 인생의 시간표를 멋있게 잘 짜야할 텐데, 봄이라서 그런가 식곤증은 몰려오고 갱년기 아줌마는 만사가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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