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망살

by 도라지

일전에 요즘 명리학 공부에 푹 빠져있는 선배님과 또 한 명의 친구와 셋이서 봄날의 정취를 읊으며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아마도 <라일락꽃이 피었다>라는 글을 쓴 날로 기억된다.


술친구로 가장 좋은 사람은 술고래도 아니요 돈고래도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지식과 인품이 출중할수록 술자리에서는 빛이 나기 마련이다. 지식을 꺼내 놓되 허세를 부리지도 않거니와,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어설프고 학식이 낮은 타인의 논리마저 귀담아듣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야말로 술자리 벗으로서 손색이 없다. 거기에 재치마저 겸비하고 있어서 상대방의 기분을 적절하게 up할 수 있도록 리액션을 취해준다면 금상첨화다. 때로는 겸양을 부릴 줄도 아는데 그게 정말 본성적으로 배어있는 진실된 자세이기도 하다면, 그야말로 술자리의 귀인이 아닐 수 없다.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 선배가 딱 그런 술자리 귀인의 상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한참을 찾아야 몇 가닥 찾아낼 수 있는 그깟 머리숱 정도로 그의 빛나는 아우라가 감소하는 건 아니다. 아, 이놈의 예리한 내 두 눈이여~ 사람을 이리도 정확하게 간파하는 능력을 가졌건만, 왜 삼십 년 전에 내 꽁무니를 따라온 남자와 부부의 연을 맺고 산단 말인가. 그래서 부부는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는 말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가 보다.


두 해 전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낙엽이 지던 무렵이었다. 선배랑 둘이 앉아 술을 마실 때, 이미 선배는 내 사주를 풀어본 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내게 사주에 '공망살'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해가 지나고 라일락꽃이 피었던 며칠 전, 그날 마주 앉아 먹던 술집에서 취기가 오른 선배는 그의 휴대폰을 열어 내 사주를 직접 내 눈앞에 보여 주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금"이 세 개나 떡 하니 위에 앉아 있어서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내 눈엔 가운데 아래 "空亡煞"이라고 적혀있는 것만 유난히 크게 보였다. 명리학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빌 공'자에 '망할 망'자만 보면 대충 '공망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공망살에 유심히 눈길이 가있는 내 눈앞에서, 선배는 천기누설이라도 한 것처럼 얼른 자신의 휴대폰을 거두어갔다.


이미 나는 수십 년 간 공망살의 삶을 살아온 터라, '금'의 기운이 많은 사주라는 말이든 '공망살' 사주라서 이루는 게 없이 허탈한 삶을 살 거라는 등의 말들이 하나도 거슬릴 게 없었다. 나는 일찌감치 나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그리고 그 운명에 맞서 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는 참이다. 딱 하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남편의 섣부름일 뿐이라서, 그것에까지 마음을 비우면 얼추 비웠다 할 수도 있을 텐데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나의 마음이 비워지지가 않고 자꾸만 화가 난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는 사주에 다섯 개의 기운이 골고루 들어있어 좋은 사주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온화하고 친화력이 좋으며, 공직자로 유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보다. 정작 사주를 봐준 선배는 본인의 사주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공개하지 않아도 이미 그의 훌륭한 삶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사실 선배의 사주가 딱히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나는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함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남들이 실천하지 못하는 한 가지를 평생토록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는 선배의 사적인 영역이므로 밝히진 않겠다.


공망살을 갖고 태어났다는 나는 사주대로 특별히 성취한 것이 없다. 어릴 적부터도 인생에 대한 계획이나 직업에 대한 야무진 꿈같은 것이 적었다. 막연히 시인이 되어보고도 싶었고 대학교수가 멋있을 것도 같았지만, 정작 가장 구체적으로 꾼 꿈은 가끔 가든파티를 여는 귀부인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집안에 몇 명의 일꾼들을 둘 것이며 어디에 무엇을 배치하고 공연에 누구를 섭외하고 싶은지 참 꼼꼼히도 상상하느라, 나의 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공망살 주제에 가든파티를 주최하는 귀부인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상상이었다.


얼마 전 강의를 나가고 있는 고등학교에선 철학 수업을 정규 과목으로 개설해 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교원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철학 선생이 드물기 때문이다. 비록 영어과 교원자격증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환영하는 눈치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제안을 거절했다. 철학을 국영수 교과목처럼 정규 과목으로 집어넣고 시험을 치르고 점수를 매기는 순간부터 인문학의 비극은 다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이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처럼 외부 강사로서 철학 수업을 희망하는 학생들 앞에 서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정규 교사직을 거절하는 이러한 나의 행태도 공망살과 아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철학교수들에 비한다면야 상대적으로 철학의 지식이 일천한 내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학문하는 자의 즐거운 자세이다. 철학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학문하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지금처럼 교양선택으로 학생들 스스로 희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학생들과 수업하며, 나 또한 대학 입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학문하는 선생으로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제안에 대해선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엔 썩 괜찮은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일 게 뻔하므로, 구태여 입 밖에 내어서 좋을 게 없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공망살이어도 좋고 정규직 교사가 아니어도 좋다. 내가 눕고 싶을 때 눕고, 가족들 식사 때마다 따뜻한 밥상 차려주며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좋다. 원대한 꿈같은 거 애초에 꾸지도 않고 무언가를 크게 이루고 싶은 욕망도 없다. 글을 쓰고 싶을 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글을 쓰며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공망살이라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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