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학 저술가이며 미국 예일대에서 adjunct professor로 재직하고 있는 칼 짐머가 저술한 <진화>라는 책을 매우 재밌게 읽고 있다. 그 대단한 저술가는 내 남편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 쩝..
직접 돈을 주고 구매하는 건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가방 안에는 소설책 두 권에 철학책은 꼭 한 권씩 끼어 있고 생명과학 분야의 책도 가끔 담겨 온다.
최근 십 년 동안 한 번도 읽지 않았던 소설책을 빌려 읽기 시작한 건 고작 넉 달 전부터인가 보다. 삼류 소설을 쓰든 이류 소설을 쓰든, 무언가를 쓰려면 남들은 어떻게 쓰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소설책만 빌리기엔 뭔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이, 나의 두 눈은 철학 분야와 생명과학 분야, 사회학 분야 등에 골고루 시선을 주기도 한다.
칼 짐머가 쓴 <진화>의 첫 장에는 "그레이스에게"라는 문구가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레이스~ 당연히 여성 이름으로 들리는데, 누굴까? 아내일까, 딸일까, 연인일까, 친구일까? 왜 난 이런 게 궁금한 건지 모르겠다. 구글로 들어가 검색해보니 배우자 이름으로 나온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내가 영혼까지 갈아 넣은 원고를 탈고할 때, 나는 그 책의 첫 장에 누구 이름을 쓸 것인가.
우리 집에선 아무도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뜬금없이 그들의 이름을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의 글 쓰는 작업에 무언가 기여하거나, 좌절에 빠진 나를 끊임없이 격려해 주었다든가 하는 일말의 공로라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래서 어떤 작가들은 애당초 "아무개에게", 혹은 "아무개를 위하여"라는 문구 대신에 출판사 편집부나 도움을 받은 동료나 지인들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하는가 보다. 마음속에는 간절하게 가족이 아닌 어떤 다른 이름이 떠오를 수도 있는데, 독신이 아닌 다음에야 과감하게 어떤 이름을 보란 듯이 올려놓을 수는 없을 것도 같다.
결국 원고의 정점은 책의 첫 장에 올려지는 그 이름 하나를 부르고 싶어서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레이스에게> 이 한 마디에서 칼 짐머는 '사랑'을 완수한 불멸의 우주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나는 오늘 내 책의 첫 장에 <아무개에게>라는 한 마디를 쓰기 위하여 작가가 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