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불의 in 부부

by 도라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부부라는 시스템 속에서 한참을 살다 보면, 어떠한 사건이나 다툼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별하기가 어려워진다. 선악의 경계도, 옳고 그름의 경계도 없이 모든 것들이 뭉뚱그려지고 뒤죽박죽이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망가진 그림이 되어 있기가 일쑤다. 우리가 처음에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그리고 싶었던 그림과는 영 다른 그림이 되어 있음을 수시로 확인하곤 한다.


나와 동거인으로 되어 있는 세대주 남편은 그 남자의 비위를 맞춰 주는 생글거리는 온화한 여자의 환상을 가지고 나에게 접근했으나, 그가 내게 접근할 당시에도 나는 지금처럼 무뚝뚝하고 여성적 매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속았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그에게 나를 어필하기 위해 나를 포장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던 입장인지라, 남편의 표현은 사실적 적합성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의 인연을 단지 얼굴에 드러난 인상으로만 나를 평가하고 내 속 사람을 헤아리지 못한 그에게만 책임이 오롯이 있다고 떠밀어버리고 싶지도 않다. 그냥 서로가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내가 신경과에 드나들기 시작한 건 2015년이었나 보다. 남편의 새로운 문제가 발단이 되긴 했지만, 이미 나는 오래전부터 불안증과 화병을 가지고 있었다. 삼십 년이 되어가는 두 언니의 조현병 증세가 갈수록 심해져서, 나의 일상생활에 타격이 있는 건 물론이고 심리적 고통과 불안감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던 터였다. 거기에 반복되는 남편의 크고 작은 실수들로 인해 내 일상은 살얼음판을 건너가듯 하루도 평화로울 날이 없었다. 그렇게 병이 들어서 나는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수면제를 끊게 된 것은, 어느 날 육 차선 도로 위에서 신호 대기 중에 엉뚱하게 출발한 뒷 차에 치여 목에 깁스를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삶과 죽음이 찰나에 있음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된 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던 정체 모를 두려움과 불안들이 내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죽음 앞에선 대수로울 게 없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러고 나서 나는 불면증에 대한 공포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갱년기에 접어들어 신체의 이곳저곳에 예전에는 없던 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한 번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단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내 존재의 현재성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 그 존재성 하나에만 집중하게 된다. 내게 있어 나의 죽음이야말로 세상의 종말을 의미할 뿐이기에, 결혼 후 이십칠 년 동안 남편과 아이들에게 헌신했던 시간들마저 사실상 나의 죽음 앞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변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내 몸속에 지니고 살았던 부모와 언니들에 대한 연민을 내 몸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걱정마저 이제 내 몸 밖으로 꺼내 놓으려 한다. 내 한 몸 추스르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는 갱년기는 이제 나에게 다르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삶과 가족들의 삶을 바라보는 내 생각이 바뀌었다고, 우리 부부의 관계성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것에도 정의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 부부 사이엔 온갖 불의가 판을 치고 있는데도 봄날은 잘도 간다.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처럼 보편적 불의가 당당히 비추며 서있는 부부라는 어둠의 길을 나만 걸어가고 있는 걸까, 남들은 보편적 정의 속에서 대체로 행복한 날들을 살아가는 걸까, 그것이 봄밤에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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