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남편과 조치원 고복저수지 가는 길가에 벚꽃을 구경하러 갔다가,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 때문에 차가 나아가지를 못해서 행선지를 바꾸어 근처 오봉산으로 간 적이 있었다. 오봉산 맨발 등산길이라는 이름답게 산길을 오를 때 밟히는 흙의 촉감이 좋아서, 그날 산행 이후로 그 길에서 맨발로 만났던 흙이 자주 생각이 나곤 했다.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남편과 크게 한판 시비도 붙지 못하고, 나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아줌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무작정 차를 달려 세종 중앙공원에 갔었다. 눈부신 햇살 속으로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너무 좋아서 신발을 벗고 흙을 밟고 싶다는 충동이 내 안에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남들은 다들 가족과 혹은 연인과 함께 산책을 하는 일요일 오후에, 나 혼자 낯선 곳에서 신발을 벗는 게 공연히 용기가 나지 않아 끝내 맨발로 흙을 밟아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이 되었다. 맨발로 흙을 밟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나 혼자 아파트 뒷산에 올라갔다. 월요일 오후 세 시, 부모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들이다. 도심과 산자락을 연결하는 시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타인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고 운동화를 벗어 양손에 집어 들었다.
어라, 발밑에서 느껴지는 흙의 기운이 지난번 오봉산의 느낌과 너무 달랐다. 오봉산 등산길이 부드러운 황토흙이었던 반면에 부모산 토양은 차갑고 거친 입자들로 뒤섞여 있는 듯하였고, 일조량과 숲 속의 수종에도 차이가 있어서 흙의 온도와 성질, 감촉 등이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숲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산으로 오르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오늘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섰다가 우연히 아무도 모르게 혼자 피어있는 분홍빛의 겹벚꽃을 발견했다. 무릇 아름다움의 절정은 감추어진 곳에 있다고 가르쳐주려는 듯이, 그 벚나무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은밀한 곳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나는 저절로 자석에 이끌리듯 그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꽃을 향해 달려든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이에 피어있는 이팝나무의 하얀 꽃에는 몸통이 튼실해 보이는 벌과 하얀 나비가 서로 경쟁하듯 달려들고 있었다. 우리는 숲 속에서 잠시 그렇게 꽃향기에 취해 이리저리 꽃나무를 옮겨 다니며 꽃송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고양이가 봄빛을 등에 업고 작은 절이 있는 곳을 향하여 어슬렁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고양이의 느긋한 뒤태에서 봄이 건네는 충만한 기쁨을 확인한다. 산까치가 풀밭에서 맨발로 깡총깡총 걸어 다니는 옆으로, 나도 맨발로 숲길을 걸었다.
저만치서 등산을 마치고 귀가하는 등산객의 발걸음을 하고 있는 고양이가 나와 마주 보며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좁은 등산로에서 등산객들이 서로 마주칠 때 누군가는 한쪽으로 피해 주듯이, 나는 녀석이 점잖게 제 갈길을 지나가도록 한쪽 옆으로 피해 주었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고양이의 풍채가 꽃잎이 남아있는 봄길 위에서 의젓해 보였다.
그리 높지도 않은 산자락에서 다시 운동화를 신고,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데 왼쪽 발의 모서리에 미세한 통증이 느껴진다. 양말을 벗고 확인해보니 가시 하나가 박혀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수려한 겹벚꽃과 봄길을 걷는 고양이들과 수풀 위를 걸어 다니던 산까치에 대한 기억과 함께 봄산에서 가시 하나를 데리고 왔지만, 그래도 특별한 봄날 하루를 나 혼자서 아름답게 살았다. 아직 나의 봄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