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가에 시내버스 정류장 옆으로 라일락꽃이 수수하게 피어있는 게 보였다. 요란하진 않아도 눈에 띄는 사람처럼 라일락꽃은 딱 그런 정서를 지니고 있다. 우리 동네에선 아직 라일락꽃을 보지 못했는데, 이쪽 동네 길가에는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다른 곳 보다 일찍 라일락꽃이 피었나 보다. 오래된 차 안에 앉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인데도, 마치 라일락꽃 향기가 내 차 안에 가득 찬 느낌이었다.
어제 동네 언니가 농사지은 대파와 한우 양지머리 등을 국 끓여 먹으라며 가져다준 게 있어서, 소고기 반은 뭇국 속에 집어넣고 남은 반 덩어리를 포장해서 친정집에 가져다 드리고 오는 길이었다. 늙으신 부모님이 기력도 없어서 바깥 외출도 거의 못하고 지내셨을 텐데, 어쩌다 코로나에 걸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나마 잘 견디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남편이 선물로 받아 온 표고버섯과 사과 한 상자, 지난번 마트에서 할인 값에 주고 산 여름 샌들까지 이것저것 꼼꼼하게 챙겨 들고 친정엘 들어섰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큰 언니가 핑크빛이 은은하게 도는 베이지색 샌들을 보자마자 냉큼 집어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큰 언니 눈에 두유랑 김, 사과 등은 당장 먹고 싶은 군것질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 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작은 언니의 조현병 증세가 너무 심해서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이 나서서 정신병원 입원을 도와주었을 때, 동사무소 직원과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작은 언니는 작년에 정신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되었다. 퇴원 후 자기의 새로운 신분증에 대해 알게 된 언니는, 오늘도 그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나에게 항의하였다. 나는 그것에 관해 대꾸할 기운도 없어서 조용히 문을 닫고 친정집을 나왔다.
친정 식구들을 보고 돌아가는 길가에서 우연히 본 라일락꽃이 늙은 부모님보다 더 반가웠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막내딸이 이렇게 쓰리게 살고 있는데도, 늙은 부모님은 내 아픔 따위 헤아리실 줄도 헤아릴 겨를도 없으신 양반들이다. 그저 그분들이 내 부모고 내 형제라 해서 나는 이렇게 친정집을 가끔 들여다보고 산다. 부모님도 언니들도 내게 고통을 주고 싶어 주는 것이 아닌데도, 나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다. 가족이지만 내게 고통만 주는 존재, 그래도 나는 그들을 어김없이 가족이라고 부른다.
집으로 돌아와 어제 나이트 근무를 하고 돌아온 큰아들 방의 기척을 살핀다. 아침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배가 고파서 이때쯤이면 잠에서 깨기도 하는 녀석인데 일어난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깨기 전에 참나물을 무치고 표고버섯을 썰어놓는다. 장성한 두 아들도 가족인 건 틀림없는 사실인데, 이상하게 이 집에선 늙어가는 아줌마 한 사람만 집안일을 혼자 다 한다.
녀석들은 관절이 약해져 가는 엄마에게 기생해서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저희들 초등학생 때의 그 엄마로 나를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아파도 일어나서 밥을 했던 엄마의 필승의 정신이 녀석들을 염치없는 놈들로 키웠나 보다. 나는 갱년기를 겪으며, 가끔 자식 놈들이 뻔뻔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엄살을 부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빌어먹을 이 자존심이 뭐라고 나는 아직도 나약한 아줌마로 살고 싶지가 않다. 그냥 저절로 자식 놈들이 그리고 남편이 염치를 아는 남정네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집안에서 쓸데없는 자존심까지 부려가며 아직은 강한 척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요 며칠은 내 마음에 열정이나 바람 같은 것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우울감과 무기력감만이 내 몸속을 휘돌아 다니며 나를 미련한 신체로 전락시켰다. 이유를 추궁해보자면야 여러 가지 원인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갱년기에 브런치 작가로 데뷔한 아줌마의 볼품없는 문장 탓이 가장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대로 낙오자가 되는 것일까? 선두 대열에 합류해 본 적도 없는 내가 벌써 무리에서 뒤처져서 낙오자가 되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갱년기에 새로운 일을 향해 간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 의심의 경계를 지나 낙담의 구역으로 나는 벌써 입장해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뭐라고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한 게 아니었지 않은가. 그냥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언제부터인가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쓸데없는 꿈을 꾸기 시작한 뒤로 나의 즐거움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나를 좌절하게 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욕심일 것이다.
내게 고통과 책임만 주는 친정이긴 해도, 그래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인간은 어차피 고통받으며 살도록 설계되어진 생명체다. 아이들 어릴 때처럼 살림이 곤궁한 것도 아니고 먹고살 길이 막막한 것도 아니므로, 오늘 나는 어딘가에 피어나고 있을 라일락꽃을 떠올리며 좋은 친구와 술 한 잔 해야겠다. 떠나간 목련과 벚꽃에 대한 기억마저 아름다운 진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