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마음

호모 에티케테스(Homo Etiquettes)

by 도라지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다. '왕'이라 하지 않고 '여왕'이라 칭한 것을 가지고 우리는 페미니즘적 시선에서 구태여 논란을 부여하지 않으며, 남성적 시선에서 수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자연에는 음과 양의 기운이 존재하며 밤과 낮이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은 남과 여로 구별되어 있다는 자연스러운 이치 또한 인류가 추구하는 평등사상만큼이나 위대한 가치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할 때가 가끔 있다.


여왕이라는 직위를 부여받은 계절답게 오월은 눈부시게 화창하고 아름다운 시절임은 틀림없다. 그 계절에 남편과 둘이서 목포와 신안을 거쳐 진도를 2박 3일의 여정으로 다녀왔다. 첫째 날 출발 직전부터 남편을 차에서 오분 기다리게 하는 동안,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집안 정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차에서 기다리다가 마누라에게 전화를 거는 남편의 심리적 전개 상황을 예측한 작은 아들이, 뒷정리는 본인이 할 테니 얼른 나가보시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그래, 이빨 없으면 잇몸이다. 다 큰 아들들이 둘이나 있는 집인데, 이제 모든 걸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가사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어온다는 막중한 이유로 주로 화를 내는 쪽을 담당하고 있는 아빠와 가끔 참지 못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엄마 사이의 일상적인 다툼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작은 아들의 염려를 뒤로 하고, 그렇게 남편과 둘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작은 아들의 걱정 때문이었을까, 우리 부부는 2박 3일의 여행 동안 단 한 번도 다툰 적도 충돌한 적도 없었다. 나는 이제 얼추 남편의 패턴을 파악하고 있으며, 어느 지점에서 화를 낼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여행 동안 그 지점을 피해 가고 싶었다. 원유값이 올라 주유비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호텔비며 식비 등 거금 들여 떠나는 여행인데, 인풋에 들어간 비용만큼의 아웃풋을 뽑아내려면 마땅히 싸우지 않는 여행은 기본이다.


섬으로 이어진 푸른 바다와, 보리가 자라고 있는 초록의 들판 사이로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은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그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싸우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옆에 남편이라는 한 남자가 있는 것도 사실 의식하지 못할 만큼 풍경에 취해서 연신 감탄만 자아내었기 때문이다. 넉 달 전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서 영덕에 다녀왔을 때 빨갛게 들어왔던 엔진 경고등이 이번 여행에서 다시 켜졌을 때도, 우리는 다투기는커녕 당황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서로를 안심시킬 정도였다. <우리 부부가 달라졌어요>에 나와야 할 만큼, 우리 부부는 놀랍게도 발전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후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켜 두었던 차 안의 블루투스를 통해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구끼리 이상하네~ 둘이 바람피우러 갔나 보네. 큭큭"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고등학교 철학 수업이 있었다. 이미 수업에 사용할 ppt와 출력물 준비는 마친 상태였지만, 수업에 들어가기 전 다시 철학책을 두어 권 읽는 것 또한 나의 루틴이다. 일회 출강에 총 세 시간을 수업하려면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할 자료들이 꽤 많으며, 이미 알고 있는 나의 지식도 연거푸 다시 점검해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의 지식 저장 창고의 문이 녹슬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문을 열고 신속하게 지식과 언어를 끄집어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문이 자꾸만 삐걱거리는 통에 순발력 있게 필요한 정보를 꺼내서 쓰기가 조금씩 곤란해지고 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습관이 생겼다.


그날도 수업을 가기 전에 철학책 두어 권을 다시 읽고 있었다. 한 권은 수업에 가지고 갈 가방에 넣어두고, 다른 한 권은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식탁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 소파 테이블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남편을 위해 간단한 아침 식사를 소파 테이블 앞으로 날라다 줄 때였다. 내 책이 속살을 드러낸 채 테이블 위에서 나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옆으로 지난밤 남편이 붙였던 마스크팩과 빈 과자 봉투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책의 서문 다음의 첫 페이지에서 뒤로 접혀 몸통을 비틀고 있는 책을 보는데, 내 마음도 순식간에 뒤집혀버렸다. 얼른 책을 집어 들고 얼룩이나 상처가 없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어떠한 상처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드디어 꾹꾹 닫아두었던 내 입이 열렸다.


"책을 읽고 이렇게 뒤집어 놓으면 안 돼요~ 얼룩 같은 게 묻을 수 있잖아요. 내가 아끼는 책이란 말이에요."


남편은 그깟 것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꾸도 하지 않다가, 실없는 농담을 한 마디 던졌다.


"호모 에티쿠스, 에티켓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지?"


"에틱(ethic)은 도덕, 윤리란 뜻이에요. 에티켓 하고 어원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당신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네요."


프랑스어 에티켓(etiquette)은 고대 프랑스어의 동사 estiquer(붙이다)에서 유래한 말로 예의범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프랑스어가 라틴어 계열에서 파생된 언어이다 보니, 그리스어 ethos(습관, 관습)에서 유래된 ethics(윤리학)와 언어의 꼴이 약간 비슷한 데가 있는 것도 같다. 고대에서 AD로 넘어오는 시기에서 유럽의 패권을 장악했던 로마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아 고전 라틴어가 형성되었다. 라틴어는 인도유럽어족 로망스어군 언어들의 할아버지 격인 언어이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이 대표적인 로망스어군이며, 영어 또한 라틴어 계열의 영향을 받은 단어들이 많이 있다.


남편이 "호모 에티쿠스, 에티켓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지?"라고 물을 때, 내 귀에는 윤리적 인간(호모 에티쿠스)이든 에티켓이 있는 사람이든 상관이 없게 들렸다. 나는 속으로 혼자 지껄였다.


'당신이나 좀 에티켓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어떨까?'


철학자 김상봉 교수가 윤리적 인간의 탄생을 '호모 에티쿠스'라고 표현했다면, 나는 오늘 에티켓 있는 남편의 모습을 기다리는 염원을 담아 에티켓 있는 인간의 탄생을 '호모 에티케테스'라고 명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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