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군인들의 참호격투와도 같았던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던 날이다. 오후에 여유롭게 투표를 하고 나서 다 큰 아들놈들 저녁을 일찌감치 차려주고, 남편과 둘이서 성안길에 있는 오래된 냉면집으로 향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있던 가게인지 아니면 고등학교 때 생겨난 집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동그라미>는 청주 성안길의 가장 오래된 맛집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지금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주인 아저씨가 육십을 넘긴 지도 꽤 오래전 일이지만, 주인장의 아버지 때부터 수십 년 이어져 오고 있는 냉면집의 메뉴는 달랑 두 가지뿐이다. 비빔냉면과 수제 햄버거~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던 친구가 한국에 가끔 들어올 때마다 가장 먼저 찾아가는 식당이 바로 이곳이었다.
"두 개, 하나요~" 무슨 암호처럼 주문하면, 비빔냉면 두 그릇과 햄버거 하나가 가운데가 잘라져서 나온다. 가끔 아주 배가 고플 땐 햄버거를 두 개 시켜보지만, 그래도 햄버거 하나를 주문해서 두 사람이 반씩 나눠 먹는 맛이 더 좋다고 우리 부부는 오래전에 결론을 내렸었다. 무언가 아쉬운 듯 느껴질 때, 우리의 뇌는 그 음식이나 사람을 더 좋은 것으로 기억하는 것 같다.
우리는 후식으로 중앙공원 바로 앞에 위치한 <쫄쫄이 호떡>을 한 개씩 집어 들고 공원 벤치에 가서 앉았다. 한 때 박카스 할머니들로 유명했던 중앙공원에는 소일거리 없는 어르신들이 늦은 저녁까지 떼를 지어 몰려 있곤 했었다. 막걸리라도 한 잔 들이켠 어느 할아버지의 주사가 시작되기라도 하면, 공원 내 소동은 요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젊거나 늙거나 혹은 어리거나 할 것 없이 수컷들은 힘자랑을 하며 영역 다툼을 하는 게 당연한 이치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무리 중에는 욕설을 퍼붓거나 다른 할아버지에게 시비를 거는 할아버지가 반드시 있었다. 우리 아이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런 광경은 자주 목격되곤 했었다.
이제 시대가 바뀌고 노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어르신들의 놀이터였던 중앙공원에도 새로운 개혁의 바람이 몰아쳤다. 무조건 힘자랑만 하고 무식이 용감이라는 논리만 앞세우던 어르신들이 한두 분씩 세상을 떠나가고, 이제는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으로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공원 안에는 관할 경찰서에서 걸어놓은 현수막이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거기에는 커다란 글씨로 <공원내 도박, 성매매 음주 소란 등 불법 무질서행위 강력 집중단속>이라고 적혀 있었다.
청주읍성의 가장 중심부에 해당하는 공원 안에는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문, 망선루 등의 문화유적이 있고, 공원 한가운데는 천년의 세월을 견뎌 온 커다란 은행나무가 우뚝 서있다. 압각수라고도 불리는 은행나무 옆으로 "천년의 사랑길"이라고 이름을 붙인 하얀색의 원형 터널을 세워놓았다. 호떡을 먹으며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들이 속이 훤히 보이는 하얀 터널 속으로 수줍게 들어가며 천년의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차분하게 내려앉는 땅거미 속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아저씨가 움직이고, 그 옆으로 자전거를 탄 아저씨와 모자를 쓴 아저씨 한 분이 다가갔다. 조용했던 공원에 세 명의 남자 목소리가 거침없이 울려 퍼지며 공원의 한쪽을 당당하게 장악했다. 가급적 남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세상엔 언제나 소란스럽게 자신들을 드러내려는 무리가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는 그들을 피해 저만치 다른 데로 이동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선거가 끝이 나고, 참호에서 노란색 전투복을 입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광역의원 2명과 기초의원 7명뿐이었다. 파란색 진영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총 2,137명의 당선인을 배출한 빨간 전투복의 진영에선 12명의 시도지사와 145명의 구시군의장이 당선된 반면에, 파란색 진영에선 당선인 1,776명 가운데 시도지사 5석과 구시군의장 63석을 차지하였다. 마음이 씁쓸하다.
공원에서 보았던 떠들썩한 아저씨 무리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고 신성한 투표권을 가진 선량한 시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부득이하게 공원 내 이용 규칙을 언급해야 할 때도 생길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투를 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