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바 인생

by 도라지

희미하게 보이는 수평선 너머로 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하늘과 바다가 회색빛으로 상의와 하의를 맞추어 입은 듯한 풍경을 배경으로, 서천 장항항 물양장에는 “꼴갑(꼴뚜기와 갑오징어) 축제”의 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바다가 보고 싶어서 남편을 꼬드겨 우연히 서천으로 향했다가, 때마침 축제가 열리고 있는 장항항에 도착했다.


물양장에 세워져 있는 천막 안에는 물건들을 팔려고 나온 상인들이 힐긋거리는 손님들을 잽싸게 천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며 옅은 웃음을 흘렸다. 남편은 이미 여기를 수차례 다녀가 본 사람처럼 주저하지 않고 나를 이끌고 천막들 사이를 가로질러 품바 공연장을 향해 걸어갔다. 공연장 안에는 “작은 거인 예술단”이라고 적혀 있는 대형 현수막이 무대 뒷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남편이 거기에 걸려있는 여러 명의 사진 속에서 한 여자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맨 오른쪽에 <품바의 여신 버드리>라고 보이지? 내가 본 각설이 중에 최고야. 그녀가 왜 최고인지 당신도 보면 알 거야. 그런데 언제 나오는 거지?”


각설이 컨셉과는 별개로 스타일리시하게 의상을 차려입은 ‘점팔이’의 공연이 한창일 때, 각설이 분장을 한 ‘다홍이’가 엿을 들고 관객석으로 찾아왔다. 만 원짜리 엿을 사서 가방에 찔러 넣고 한참을 앉아 있어도, 남편이 기다리는 ‘버드리’는 나타나질 않았다. 점팔이의 팬들이 무대 옆에서 소형 플래카드를 들고서 박자에 맞추어 몸을 흔들다가, 무대 위에 소인(dwarf) ‘윤정이’가 등장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윤정이의 팬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났다. 버드리가 나오지 않아 실망한 표정을 한 남편과는 달리, 그의 아내는 신명 나는 각설이 공연에 넋을 놓고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장 옆으로는 서천의 이름난 횟집들이 몰려나와 일제히 천막을 치고 축제에 온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유월의 장항항에서 몇몇 팀들은 천막 안 테이블에 앉아 어깨를 웅크린 채 잿빛 바다를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날씨가 쌀쌀해도 회를 곁들인 소주는 역시 바다를 보며 먹는 맛이 일품이라고 증언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금강하굿둑 근처에서 해물 칼국수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반가운 톡이 왔다. 열무김치 담가놨으니 나누어 먹자고 한다. 수술실 팀장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는 평생을 쉬지 않고 일을 한 사람이다. 친구에 비한다면야 나는 거의 백수로 세월을 보낸 아줌마인데, 직장인 친구가 담근 김치를 내가 얻어다 먹는다. 어디 김치뿐이랴, 가끔 나는 친구의 집에 가서 가방이 찢어지도록 친구 집 냉장고를 털어오기도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아쉬운 친정 상황을 대신해서 신은 내게 친정 언니 같은 친구들을 몇 명 보내주셨다.

장터에서 한바탕 놀다가는 각설이들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이라도 선물하며 먹을 것을 얻는다지만, 노래 한 자락, 춤사위 한 동작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친구 집 냉장고를 털어가는 내가 참으로 뻔뻔스럽기도 하다. 이제라도 각설이 타령을 배워서 친구 집 냉장고 털러 갈 때마다 구성진 소리 한 자락 뽑으며 들어가 볼까, 그런 시답잖은 상상을 해보는 사이 어느덧 집에 당도했다.

이제는 고유 명사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품바’는 80년대에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공연이었다. 1981년 극작가 김시라 선생이 기존의 ‘각설이 타령’을 원형으로 하여 연극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 ‘품바’였다고 한다. 각설이 타령은 집을 떠나 유랑하던 걸인들이 장(場)이나 잔치 집을 돌며 동냥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다. 백과사전에서 ‘품바’의 어원은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라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각설이 타령과 품바 타령은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요즘은 그것을 동일시하는 풍조가 지배적이다.

각설이가 부르는 타령이든 장돌뱅이가 부르는 가락이든 아무려면 어떠한가. 음성 꽃동네 입구에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대학 시절 해마다 여름이면 혼자서 배낭 하나 메고 열흘씩 봉사 활동을 갔던 곳이다. 수십 년이 흘러 지금에 와서,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절절하게 깨닫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는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존재여야 마땅하다. 각설이로 살아도 이 세상은 오지게 아름다울 수 있다. 버드리 공연을 유튜브로 자꾸만 보다 보니 벌써 밥때가 되었다. 재일이가 담가 준 열무김치가 맛있게 익었다.

keyword
이전 14화참호격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