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첫사랑

by 도라지

우리 집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다. 성당에 새로 보좌신부님이 부임하시면, 주일학교 교리교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자모회 어머니들마저 공연히 설레고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주임신부님이 오고 가시는 것과는 다르게, 성당 안은 새로운 젊음의 기운을 맞이하려는 움직임들로 조용히 부산스러웠다. 자모회 어머니들의 헤어스타일이 바뀌는 시즌도 부활절이나 성탄절이 아니라 이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냉담자'라는 호칭으로 지내고 있는 나의 기억 속에는, 한때 구역장 직위를 맡아 열심히 봉사하던 열혈 평신도 아줌마의 모습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성탄절에는 자모회 어머니들을 이끌고 안무를 짜서 무대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중학생 시절부터 발휘됐던 나의 치어리더 열정은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 내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이제 나는 무대에 올라 펄쩍펄쩍 뛰며 율동을 할 수 있는 체력도 관절도 가지지 못했다. 그래도 가끔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혼자 막걸리 마시고 덩더꿍 체조라도 하며 흥을 돋우긴 하지만, 팔다리를 허공에 몇 번 휘적거리는 수준의 동작에 그치고 만다. 모든 좋았던 시절이 저만치 사라져 가고, 남은 것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갱년기의 서러운 몸이다.


이 나이에 도달하지 않고선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야속한 세월이라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라는 말은 보편적인 인간의 가장 동지애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늙음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존재의 소멸을 담보하고 있기에,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있는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며칠 전 친구가 보내온 한 남자의 사진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젊음이 있다"는 명제가 전혀 강박스럽지 않다고 전해주었다. 사진 속에 들어 있는 내 친구의 첫사랑 남자 친구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그 남자 친구는 이제는 그녀의 첫사랑으로만 멈추어있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그 남자 친구는 우리 모두의 첫사랑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재석을 '유느님'으로 호칭하듯이, 우리에겐 '방느님'으로 통하는 그 친구는 며칠 전 사진 속에서도 여전히 대학생 같은 싱그러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 남자 친구의 인물이야 익히 알고 있는 터지만, 갱년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우리들보다 훨씬 어려 보여서 우리는 괜히 기가 죽었다. 남의 첫사랑 사진 한 장에도 기가 죽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작년에 캠핑카를 장만했다는 그 남자 친구의 캠핑카에 언젠가 우리들도 초대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나는 오늘 일 년에 큰 행사를 앞두고 있을 때나 하는 마스크팩을 모처럼 얼굴에 붙여보았다. 내 첫사랑도 아닌 내 친구의 첫사랑의 캠핑카에 과연 초대되어 갈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새 보좌신부님 오실 때처럼 들뜬 마음으로 갱년기 아줌마가 팩을 한다. 내 친구의 첫사랑이 캠핑카를 장만했다는데, 왜 주책맞게 내가 팩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비가 오려나, 몸뚱이가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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