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

by 도라지

이틀 전 토요일 늦은 저녁이었다. 나이트 근무를 하기 위해 저녁 여덟 시 무렵에 집을 나선 큰아들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전화기가 꺼져 있는데, 아빠 집에 계세요?"

"안 계신데, 왜 그러니? 동창 모임 나가셨다가 십분 전 차 들어오는 메시지 떴어, 아마 동네 형이랑 또 산책하고 계실 거야."

"응급실에 심정지 환자 들어왔다가 사망했는데 교통사고가 크게 났대요.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 몰라요. 우리 병원 근처에서 사고 났다는데요, 차가 전복되면서 인도에서 산책하던 아저씨를 덮쳤나 봐요. 아저씨도 크게 다쳐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숨졌대요. "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 차가 들어왔다는 홈패드 소리를 듣고 차량 번호를 확인한 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역시나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메시지를 나도 오 분 전에 확인한 바 있었다. 교통사고의 전체적인 내막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 응급실로 실려오는 환자들을 마주한 큰아들은, 주변 동네를 한 바퀴 크게 산책하기도 하는 아빠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때마침 아빠의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공연히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다.


뒷좌석에 18개월 된 아기를 태우고 가던 40대 여성이 운전하던 차가 경찰차와 충돌하면서 전복되어 부서진 사고로 경찰들과 아기는 경미한 부상을 입었지만, 운전을 한 여성과 산책 중이던 남성이 끝내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었다.


아들과 통화를 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남편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왔다. 어라, 남편의 휴대폰이 멀쩡하다. 절묘하게도 마누라와 자식 놈이 전화를 걸었을 때만 순간적으로 통신 장애를 일으켰던 것으로 보였다. 참으로 공교롭기도 하다.


누군가의 추측대로 그 여성이 음주운전을 했든 어찌 됐든, 한 사람의 사소한 하나의 행동과 태도로 인해 아무 연관성 없는 한 남자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벌어졌고, 응급실 간호사는 남자의 억울한 죽음에 아빠를 떠올리게 되고, 우연히 그 시각 간호사 아빠의 휴대폰은 장애를 일으켰다.


세상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일들은 때론 매우 공교롭게도 우연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기도 한다. 피해 갈 수 없는 사건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운(運)"이라 부르며, 이미 정해져 있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순응하기도 한다. 결정론적 세계관은 한편으로는 필연의 법칙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므로, 따지고 보면 세상에선 우연의 법칙이 필연의 법칙이 되고 마는 꼴이다.


몇 해 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하나의 문장을 주문처럼 외우곤 한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 명제를 떠올릴 때마다 내 안에 있던 온갖 불안과 막막함들이 명제 바깥으로 떠밀려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존재하고 있는 한, 내 속에 자리해있는 존재에 대한 불안은 완전히 소실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가 '존재자'와 엄밀하게 구별하려고 했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내 안에 웅크리고 있지만, 나는 '죽음'을 떠올리며 존재의 불안으로부터 나를 구원한다. 생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죽음의 보편성에 대한 수락이 나의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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