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란다. 눅눅하게 무더운 기온 탓에 이틀 밤을 잠을 설쳤다. 예전엔 전기세 아까워서 열대야에도 선풍기 하나를 켜놓고 남편의 발밑으로 향하게 했던 내가, 이제는 먼저 나서서 에어컨을 켜는 게 어떻겠느냐고 남편에게 제안할 정도다. 그래, 아직 우리 부부는 한 방을 쓰고 있다. 성장한 아들이 두 놈이나 있는데, 아직 한 놈도 독립을 못 시켜서 따로 쓸 방이 없는 탓이다.
산 밑에 지어진 아파트라서 그나마 도심 한가운데 아파트보다 조금은 바람 덕을 보고 사는 동네이긴 해도, 장마철 습도는 어찌 당할 재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들놈들은 각자의 방에서 에어컨 제습기능을 활용하기도 하고 얼어 죽지 않을 만큼 전기를 쓰고 있건만, 늙어가면서 조금 사유형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남편은 바깥에 비를 몰고 오려는 텁텁한 바람이라도 불어대는 걸 보고 마누라의 에어컨 작동 제안을 거절하였다.
잠귀가 밝게 태어난 아줌마가 몇 해동안 불면증을 앓고 있던 차에 갱년기까지 덮쳐 체온 조절이 안되고 있는데, 장마철의 습한 밤은 꼬박 길기도 하였다. 젊은 애들은 잠들기 전 파트너와의 격한 잠자리 운동으로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숙면을 취할 법도 하겠지만, 이제 우리는 가족끼리 그런 거 관심 없는 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내 마음은 잠을 못 자도 불편하지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경제적 사건을 일으키던 남편이(말하고 보니 무슨 경제사범인 것만 같지만, 그건 아니다. 주로 돈을 날리신다.) 지난 일 년 동안은 사소한 사건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는 덕분인 것 같다. 작년 5월을 기점으로 아직 남편은 더 이상 마누라 피 말라 죽이는 사건은 벌이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꾸준하게도 별별 사건들을 크고 작게 참 많이도 일으켰다. 그 사건의 주기란 어떤 때는 일 년에 한 번, 어떤 때는 6개월이 될 때도 있었다. 본인은 다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벌인 일이라고 하겠지만, 마음이 불안정했던 남편은 올바른 판단을 내리거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일을 저지르기 십상이어서, 나는 늘 마음을 졸이고 살았다.
부모님 밑에서 잘 저축해두었던 인내심이라는 장작을 가지고 나는 그나마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버티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5월에 터진 또 하나의 사건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수십 년간 한 사람에게 속을 썩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소리 없는 살인을 당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존재는 '살기 위해' 존재한다. 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남아있던 인내심도 체력도 바닥을 드러내고 이러다 내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에겐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할 명분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는 어느 날 남편에게 내 솔직한 심정을 덤덤하게 토로했다. 여자가 3~40대에 이혼을 할 때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을 찾아가는 거지만, 60이 가까운 황혼에는 삶에 대한 희망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여자가 이혼을 하려는 것은, 결국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내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결혼 생활 동안 다 타버려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꺼풀 같은 내 육신 속에 그래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반딧불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살고 싶어서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때마다 반복되는 여러 사건들을 일으키는 남편 옆에서는 이제는 단 하루도 숨을 쉬고 살 수가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알아듣고 그가 스스로를 돌이켜서 행동을 바꾸든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떠날 참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또 소리 없이 흘렀던가 보다. 그날 나의 이야기를 어디로 담아 들었던 것인지, 남편은 그 대화 이후로 아직은 별 사건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다.
엊그제 오후에 만났던 후배의 결혼생활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질 않아서, 그 친구를 위로해보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 같은 사람도 지금껏 결혼생활 유지하고 살잖니, 너는 그래도 나보다 낫지 않니, 상대의 좋은 점을 보고 니 마음에 기쁨을 채우고 살아, 니 마음에 기쁨은 상대방이 주는 게 아니야~"
이런 취지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 머릿속에 그동안 남편에게 당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 마음에 기쁨은 상대방이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귀한 웃음을 주어도 내가 그것을 재미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즐거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관계가 어디 그러한가? 인간관계의 가장 원초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상호 작용이 바로 부부관계인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연료통을 스스로 채우라고 후배에게 건네려던 말을 이쯤에서 거두어야겠다. "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표현은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시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무기력한 자조일 뿐이다. 내 마음에 연료통을 바닥으로 만들어버리는 배우자와는 삼십 년을 살아도 늘 바닥이 보이더라.. 내가 아직 이혼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섣부른 충고는 할 수 없지만, 각자 살 길은 각자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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